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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남북 음악 교류의 역사

#한반도 리포트 l 2023-11-01

한반도 리포트

ⓒ YONHAP News
남과 북의 관계개선 시기에는 음악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남북 음악교류가 지난 2018년 이후에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하승희 연구초빙교수와 남북한 음악교류의 역사를 짚어본다. 

1985년 9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문화 교류 개최
1985년 5월에 남북은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 및 예술 공연’ 개최에 합의한다. 그 해 9월, 역사적인 첫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서울의 국립중앙극장과 평양의 평양대극장에서 평양예술단과 서울예술단이 상호 방문공연을 개최했다. 분단 이후 최초의 문화교류였다.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남북관계는 새롭게 정립된다. 1990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되고, 10월 북한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이 참가했다. 그 해 12월에는 예술의 전당과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90 송년 통일전통음악회>에 북한 공연단이 참가해 새로운 창법과 개량된 악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1990년대 말 적극적인 대북정책이 추진되면서 남북관계도 개선됐고, 문화교류도 확대됐다. 특히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 사업이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정상회담 직후인 8월엔 KBS 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서 ‘남북교향악단 합동연주회’를 가졌다. 2년 후인 2002년에는 KBS 교향악단이 평양을 방문해 ‘추석맞이 남북교향악단 합동 연주회’를 가졌다. 특히 남북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한 ‘아리랑’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당시 공연은 남북 갈등의 시대에서 화합의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상징적인 교류였다는 평가다.

2002년부터 방송사 주도로 남북 음악 교류 이어가
이후의 음악교류는 방송사 주도로 많이 진행됐고, 대중가수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다.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MBC 주최로 평양에서 개최된 특별공연에는 남측의 대중가요 가수인 이미자와 최진희, 록 가수 윤도현, 테너 임웅균 등과 북측의 인민배우와 공훈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 후로 조영남, 이선희 등 중견 가수와 아이돌그룹 신화, 베이비 복스 등이 참가하며 장르와 세대의 폭을 넓혔고, 가왕 조용필은 2005년에 평양 7천 관객 앞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남북음악교류를 얘기할 때 2003년 평양 모란봉공원에서 열렸던 광복절 특집 KBS 평양노래자랑을 빼 놓을 수 없다. KBS 전국노래자랑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자랑 프로그램이다. 평양노래자랑은 정규 방송 프로그램을 위한 무대로 당시 진행자였던 원로 코미디언 송해 씨와 북측 여성 방송인의 사회로 진행됐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남북 모두 방송됐다. 

2018년 이후.. 합의로만 남은 음악 교류
2005년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음악교류도 뜸해졌다. 그러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삼지연 관현악단이 전격 방문, 강릉 아트센터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두 차례의 공연을 가졌다. 삼지연 관현악단은 남한 공연을 위해 북한 최고의 음악인들로 결성된 단체로 보인다. 우리 가수 이선희의 ‘J에게’를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여성 2중창과 코러스로 소화하는 등 남한의 노래와 관현악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공연을 마친 북한 가수들이 관객을 향해 ‘다시 만나자’고 했고, 실제로 그 약속은 이뤄졌다. 우리 예술단의 방북 공연이 전격 결정된 것이다. ‘봄이 온다’라는 서정적인 제목으로 평양에서 두 차례의 공연이 진행됐다. 홀로그램 영상과 무용작품으로 막을 열었고 우리 측의 가수 정인과 알리가 북측 가수들과 함께 화음을 맞춰 ‘얼굴’을 노래하기도 했다. 
마지막 곡인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다시 만납시다’를 부를 땐 남북 가수들은 물론 관객들까지 합창하며 다음 무대를 기약했다. 당시 우리 예술단의 <봄이 온다>라는 평양공연에 이어서 평양예술단의 서울공연이 기획됐다. 제목도 <가을이 왔다>로 정해졌고,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도 공연 일정이 10월로 명시됐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가을이 왔다 갔지만  <가을이 왔다>는 아직도 합의서에만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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