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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새터민 출신 한의사 ‘민들레 한의원’ 이충국 원장

2012-02-02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민들레 한의원 외형상으로는 여느 한의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이곳은 2008년, 새터민 한의사 이충국 원장이 문을 연 곳입니다.
특히 이원장의 배려 깊은 진료와 성실함으로 강남 일대에서는 꽤 유명한 한의원인데요.
항상 밝은 얼굴로 환자를 대하는 이충국 원장 특유의 친절함과 뛰어난 침술로 환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환자1) 제가 굉장히 많이 아파서 왔는데요. 침 두 세번 정도 맞으니까 확실히 좋아지는 걸 느낌으로 알고 통증도 대개 많이 없어지고 굉장히 성실하게, 선생님께서 항상 상담도 잘 해주시고 진찰하시고 항상 증상 물어보시고 치료해 주시는 게 저한테는 대개 많이 도움이 많이 돼서 지금도 꾸준하게 오고 있어요.
(환자 2) 상당히 유명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왔어요. 근데 역시 소문대로 굉장히 손기술도 뛰어나신 것 같고 상당히 상냥하시고 굉장히 열심히세요. 시간에 구애 안 받으시고 항상 병원 지키시면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좋아요.


의술로 여는 통일의 문.
하지만, 이충국 원장이 남한에서 한의사로 자리잡기까지는 먼 길을 돌아서 와야만 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읜 그는 북한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동당 입당을 원했지만, 아버지가 남한출신이라는 이유로 입당을 거부당했고 대학입학이나 진로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아야 했는데요.
결국 ‘북한에서의 생활은 희망이 없다’ 판단하고 중국행을 결심, 군복무 중 탈영해 압록강을 헤엄쳐 건너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충국 원장) 탈북을 결심했던 것은 제가 아버지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부모님이) 이남 출신이란 걸 몰랐어요. 그 이후에 자라서 이남 출신이란 걸 알았고 그래서 노동당에 입당이 안됐고.. 입당이 안돼서 제대하면 시골, 고향 에 가서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탄광이나 광산에 집단배치를 해서.. 탄광에 가야하니까 걱정을 많이 했죠. ‘나 내년에 제대를 하면 어떻게 되나, 뭐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좀 여기서 벗어나면 더 좋지 않을까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을 가면 중국이 북한보다 잘 사니까.. 여기보다 나을 것 같고, 탄광·광산에 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중국을 갔는데.. 중국에서 이제 탈북자들을 잡아갖고 북한으로 간다, 이렇게 해서 거기서 못살겠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된거죠.

이후 남한에 입국한 이충국 원장이 맨 처음부터 한의사를 꿈꿨던 것은 아닙니다.
1994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 잠실에 있는 관광호텔에서 두 달 일을 하다가 수협에서 근무를 하게 됐는데요.
하지만, 남한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이 원장에게 경쟁이 치열한 남한 생활이 생각만큼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직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해 1996년 경희대 한의대에 특례입학을 했습니다.

(이충국 원장) 이제 내가 여기 와서 처음에는 송파의 수협에서 일을 했거든요? 수협에서 일을 했는데 아, 내가 한 1,2년 일하다보니까 여기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물론 샐러리맨이라고 해서 나쁜 건 없지만 그렇지만 내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내 일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의대학을 가게된거죠.
제일 어려웠던 것은 북한에서 한문을 잘 몰랐으니까 한문도 좀 어려웠고 그리고 영어도 많이 어려웠어요. 아무튼 공부하기가 만만치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시험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 시험보기도 어렵고 어쨌든 내가 이 나라에 왔으니까 어떤 내 분야에서 뭔가를 이뤄놓아야 되겠다.


이충국 원장은 마침내 2002년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경기도 하남시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의원을 개업했는데요.
처음에는 병원 운영이 신통치 않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진료하자,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몰렸고 주위 지인들과 환자들의 권유로 강남으로까지 오게 됐습니다.
최근엔 병원의 입소문이 일본까지 퍼져 주중에는 강남에서, 주말에는 해외로 진료를 나가고 있는데요.
그는 남한에서 힘들게 얻은 자리인 만큼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고, 다가서는 의술을 펼치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충국 원장) 가끔씩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살까? 생각을 나 스스로한테 많이 해 보는데 궁극적인 목표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이걸 해서 사회에 유익을 끼쳐야 되겠다, 내가 혼자 먹고 사는 건 한의사하면 나 혼자 먹고 살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그 한의사에서 끝나지 않고 이 나라에 왔으니까 사회에 유익을 무엇을 하던간에, 나라에 무엇을 환원하든, 내 지식을 환원하든, 재산을 환원하든, 뭘 환원하든 간에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돼야겠다. 그것만은 명확한 것 같아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노력과 성실함으로 성공을 이룬 그의 얼굴엔 여유와 미소가 넘쳐 흐르는데요.
그가 다른 새터민들의 귀감이 되는 것은 물론 한의사로서 좀더 큰 꿈들을 펼쳐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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