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인물

새터민 출신의 전 국가대표 선수, 황보영 감독

2014-01-23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각. 서울 목동의 한 아이스링크장 안이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데요. 무거운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날렵한 몸짓으로 능숙하게 공을 패스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직장인들로 구성된 남성 아이스하키 동호회원들입니다.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기 전 그들만의 특별한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요. 전부 남성으로 구성된 동호회원 중눈에 띄는 여성 멤버 한명. 그녀는 새터민 출신 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황보영 감독입니다.

황보영 감독
저는 황보영이고요. 지금 현재 아이스슬레지 하키 장애인팀 감독 맡고 있고요. 그리고 국내국제 심판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여자 아이스하키가 여건이 빈약해서 열악하다보니까 예전에는 월수금 밖에 운동이 없었어요. (대표팀이 모여서) 주3일 2시간씩 나머지시간은 각자 남자 클럽팀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그랬어요 그 클럽팀을 제가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거에요. 선수 생활은 은퇴는 했지만 취미로는 계속하고 있는거죠, 운동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호회원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그녀지만 빙판 위에서는 매서운 선수이자, 감독인데요.그녀의 세심한 지도와 털털한 성격에동호회원들의 칭찬이 이어집니다.

동호회원 1
황보영 선수는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아마추어가 부족한 자세라든지 기술적인 면에서 굉장히 도움을 많이 주는 선수에요 아마추어들한테도 재능기부도 하면서 서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동호회원 2
소심하고 내성적이면 이 안에서 못하죠. 남자들하고 같이 부딪히고 엮이고 같이 넘어지는 그런 운동인데 그러다보니까 털털하시고 쾌활하시고 적극적이신 것 같아요.


북한에서 체조 선수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남다른 운동신경을 보였던 황보영 감독은 12살 때부터 북한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는데요. 1999년 한국에 도착한 이후에도 그녀는 하키 스틱을 놓지 못했습니다.

황보영 감독
제가 99년 4월에 와서 (하나원) 교육과정을 거치고 나왔을 때가 10월15일에 나왔어요. 그전에 알아보고 있었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가 있는지, 한국에.. 그런데 한 팀이 있다는 거에요 나중에 나가서 알아봤더니 있는 것도 아니고 해체돼서 뿔뿔이 흩어져 있더라고요 그때 목동에서 감독님이 남자 몇 명, 여자 몇 명 레슨하고 있던거에요. 감독님과 연락이 돼서 목동에 와서 장비 받아서 운동을 시작하게 된거죠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고 여자 아이스하키를 재창단 한거죠.


한국 대표팀 주장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그녀였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몸담을 실업팀이 하나 없어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데요. 낮에는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밤에는 하키 연습을 하며 대표팀을 이끌었던 그녀는 대표팀 후배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선수들 사이에서 `어머니`라는 호칭까지 얻었습니다.

황보영 감독 (여)
아침에 5시반에 일어나서 체조하고 오후에 (태릉) 구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운동 중간쯤 되면 후배들이 배고프다는거에요. 그러면 저는 아이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토스트랑 우유, 포도쥬스를 놓고 각자 먹고 싶은 걸 따라먹게 하고 조금 일찍 일어나면 계란 후라이 해주고 어떤 날은 햄을 구워주고 운동은 얘들이랑 똑같이 했어요. 운동하는거, 웨이트 하는거, 웨이트 하고 와서 잠깐 눈부치면 (새벽에) 얘들이 와서 깨워요. “엄마! 밥할 시간이에요.” 비몽사몽 일어나서 밥하고 얘들 해먹이고 운동 같이 가고


그러던 그녀가 한국의 간판 국가대표 선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는 지난 2005년이었습니다. 당시 뉴질랜드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협회 (IIHF) 주최 여자 세계선수권대회 4부 리그에서 한국팀이 첫 국제대회 우승이라는 성적을 냈기 때문인데요. 그녀는 아직도 애국가가 울려퍼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황보영 감독
저희 같은 경우에는 경기가 다 끝난 다음에 이긴 팀 국가를 들어요(한번도 우승을 못해서) 내가 은퇴하기 전에 애국가를 들을 수 있을까? 만약에 경기 후에 애국가를 들으면 어떨까 기분이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뉴질랜드 가서 게임을 아이슬란드랑 했어요 제가 기록을 하나 세운게 그때 30초 전에 골을 하나 넣었거든요 그래서 아이슬란드를 이겼어요. 그때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고 애국가를 듣는데 그렇게 눈물이날 수가 없는거에요. 가슴이 찡한 그런 느낌 있잖아요. 감독, 코치님도 벤치에서 눈시울이 붉어진거에요. 죽기 전에 애국가를 들어보는구나, 얼음판에서


이후 2011년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는 등 황보영 감독의 활약이 계속됐습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특집 기사를 통해 황보영 감독을 집중 조명하기도 했는데요.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국 여자 아이스 하키계에서 황보영 감독이 기여한 공로와 헌신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뒤에도 지도자 자격증을 따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많습니다.

황보영 감독
일단은 장애인들 가르치고 있지만 비장애인들도 나가서 가르치고 싶고 이제는 가르치는 걸 계속 하고 싶어요. 작년에 지도자 자격증 2급도 땄거든요. 슬레지 하키도 계속 하고 싶고 지도자 생활도, 평창 올림픽 때 여자 올림픽 팀을 맡아서 나가고 싶어요. 제 목표는 그거에요. 지금부터 열심히 지도자 공부를 해야죠.


이제 대표 선수에서 지도자의 길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는 황보영 감독. 2018년 한국에서 열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다는 그녀의 꿈과 희망이 이뤄질 날을 기대해봅니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