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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합격한 이지영

2014-03-13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학년 강의실. 유독 반짝이는 눈빛으로 수업에 임하는 여학생이 있습니다. 올해 서른 한 살의 늦깎이 대학생, 탈북자 이지영씨입니다.

(이지영)
일단은 눈이 호강하는 거 같아요. 애들이 너무 예뻐요. 한번도 상상못해봤었어요. 아,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해요. 한국에 와서도 대학교 운동장을 내가 걸을 수 있다는거. 제가 대학교 운동장을 걸을 수 있다는게 정말 꿈 만 같구요.일단 지금 너무 설레요. 운동장 걷는것 만으로도 정말 너무 설레요.


한껏 부푼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지난 2008년 탈북해 처음 남한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이곳에서 대학생이 되거나 경찰의 꿈을 갖는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작년 8월, 재외국민 특별전형에서 2.2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죠.

(이지영)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정말 좋았어요. 춤출 것 같았어요. 너무 좋아서. 전화가 오는게 아니라 면접 발표가 합격발표가 문자로 오거든요. 문자를 받고 보고 있는데 합격이더라구요. 제가 정말 춤을 췄었어요. 소리를 지르면서 그만큼 간절했다는 거.


탈북 전 이지영씨는 북한 인민군 산하 인민보위대에서 초소장을 맡았습니다. 쌀을 지키는 산업경찰이었는데요.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북한의 경찰과는 달리,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고 싶었던 경찰의 꿈은 남한에 와서야 비로소 실현됐습니다.

(이지영)
그 꿈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구를 항상 보호해주고 싶었고. 지켜주고 싶었고 그런데 사실은 북한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고 특히 여자로서는 생각도 못해본 꿈이었고 하니까 포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포기를 했었다가 한국에 와서 새터민도 경찰이 될 수 있다. 저도 경찰이 될 수 있다고 해서 경찰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경찰이 공포의 대상이거든요. 공포의 대상이예요. 체제유지가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가 없어도 경찰을 항상 무서워했고. 한국에 오니까 경찰들이 정말 따뜻했어요. 제가 그런 사람들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지영씨는 북한에서 비교적 부유하게 자랐지만 늘 남한의 자유를 동경해 왔습니다. 목숨을 걸고 탈북을 결심하게 된 2006년 그해 겨울,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지영)
사실은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제가 한국 드라마 CD가 돌고 돌아요, CD를 사서 친구한테 빌려서 제가 보고 또 그거를 다른 친구한테 빌려 줬는데 그 친구가 그걸 보다가 보위부에 들키게 됐는데, 그 친구가 저한테 빌렸다고 얘기를 했고, 사실은 저한테 오면 저도 누구한테 빌렸다고 해야 하는데 저는 제 선에서 끊고 싶어서 사실은 그냥 제가 탈북을 하고 말았어요. 위험한일에 처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 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봤을때는 저도 그랬거든요. 이거 보다 걸리면 죽겠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보고 싶었어요.


죽음을 각오한 탈북과정에서 탈북자들은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오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중국을 통해 탈북하는 사람들의 8,90%가 인신매매를 경험한다고 하는데요. 중국을 거쳐 1년 6개월이 지난 2008년 5월에서야 남한땅을 밟게 된 이지영씨의 경우도 그 악몽 같던 4개월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이지영)
아마도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갔을때가 아닐까 싶은데요. 일단 갔을때 말이 하나도 안통하고 인신매매로 팔려간 몸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말도 안통하고. 제가 거기 4개월인가 있다가 도망을 쳤어요. 도망을 쳐서 나와서 거기아는 분을 만나서 한국 오는 브로커를 만나서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하루가 정말 하루가 진짜 일년 같았어요. 정말 그 정도로 지옥 같았었고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못했어요 왜냐면 여기서 죽거나 가다가 잡혀서 죽거나. 둘중 하나다. 그래도 가다가 죽자. 그래서 도망쳤던 것 같아요.


탈북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탈북민들에게 가장 먼저, 따뜻하게 손길을 내민 사람은 바로 탈북민들의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경찰이었다고 합니다. 이지영씨가 포기했던 경찰의 꿈을 다시 찾게 된 것도 바로 이분들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서울 동작경찰서 소속 신변보호 담당관인 김덕선 형사입니다.

(김덕선)
이지영 학생이 상담하다 보니까 깊은 아픈 상처와 아픔이 있더라구요. 중국에 체류하면서 중국의 인신매매 탈북민들이 당하는 고충 탈북하기 어려움을 아는 상태에서 한국에 입국해 경찰관이 된다는 것은 우리 탈북민들을 대변하고 탈북민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겠구나 해서 너는 경찰관이 되면 좋겠구나 생각돼서 많이 격려를 해줬습니다.
지금 보니까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아침 5시쯤 일어나 공부도 하고 현재도 열심히 하는. 그런데 제 생각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끝까지 해서 좋은 경찰에 입문해서 좋은 일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탈북자 7,80%는 남한사회에 정착하기까지 심리적인 치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탈북자 본인의 건강문제뿐 아니라 북한의 가족, 직장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탈북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라고 합니다.

(이지영)
탈북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일단은 나와 다른 사람일것이라 생각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놓고 보면 똑같은 사람인데 왠지 다를 것 같다. 일단 새터민이라고 하면 질문이 고정돼 있었어요. 정말로 먹을 게 없어서 왔냐? 정말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많냐? 그 질문들이 항상 고정돼 있었어요. 저는 그 질문 받는게 너무 싫었고. 같은 사람인데 따뜻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새터민이라고 말 안하고 중국사람이라고 얘기를 했더니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래서 생각한 게 그래, 내가 북한에서 태어난게 죄는 아니지 않나 당당하게 밝히자. 그래서 바꿨는데 그래도 달라지는건 없더라구요.


서른한 살 늦깎이지만 이제 막 대학 새내기가 된 이지영씨. 대학생활에서 무엇을 가장 기대하고 있을까요?

(이지영)
대학생활에서 기대되는 건 티비에서만 보던 교수님들을 제 눈으로 보는게 제일 기대되구요. 그리고 과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제가 새터민이란걸 알아도 그 친구들이 저한테 진짜 편하게 다가와줬으면 좋겠구 그 친구들이랑 정말 정말 편하게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런 좋은 친구들 만날 수 있고 같이 지낼 수 있는게 지금 참 설레구요.


이지영씨가 말하는 남한생활의 가장 큰 기쁨은 자유라고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내가 일한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자유, 그 자유에 대한 기쁨이 오늘도 자신을 춤추게 만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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