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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날숨의 시간

2014-04-24

북에 두고 온 병든 아버지를 핑계로 탈북자 미선 미영 자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돈을 뜯어내는 브로커. 지난 19일, 경기도 문화의 전당, 대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날숨의 시간” 한 장면입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탈북과 남한에서의 적응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요. “목숨 건 탈출에 성공한 이들의 남한 생활은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지난 1월부터 한 달 간
북한 이탈주민들과의 생생한 인터뷰가 이루어졌습니다. 고성웅 연출가의 이야깁니다.

고성웅
제가 봤던 14호 수용소를 탈출했던 ooo씨의 사례였는데요. 그 사람은 사랑이란 단어를 몰라요. 20살인데. 사랑이란 말이 뭐냐? 노래라는거냐? 그리고 가족이란 것은 적대적인 대상이예요. 음식물을, 내 식량을 뺏어먹는 대상일 뿐인 그런 얘기를 듣고 저는 깜짝 놀랐죠. 사랑이란 단어도 노래란 단어도 모르고 닭을 먹을 수 있다. 삶은 닭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수용소를 탈출했는데 그런 이야기가 저한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도립극단 장으로 있으면서 이런 이야기는 한번 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게 가졌죠


연극 “날숨의 시간”에서는 미선 미영자매의 고군분투 북한 탈출기, 북과는 상이한 남한체제에 대한 적응과 상대적 빈곤,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생생하게 그려지는데요.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애초 대본에 없었던 탈북 장면입니다.

고성웅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다큐멘터리 같은 거였는데요. 새벽에 압록강 같은데를 건너는 긴박감 있는 상황, 그리고 중국에서의 생활, 만키로 가까운 곳을 이동하세요. 차를 타고 트럭을 타고 밀림을 헤치고 강물을 걷고 벌레들한테 쏘이고 엄청나게 긴 여정이더라구요. 막연하게 북에서 이탈했구나 가까운 남과 북이니까 산하나 넘으면 아니면 철조망 넘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죽음의 어떤 문턱 앞에서 계속 문턱을 넘고 워낙 충격적이고 뜨거웠기 때문에 제 심장에 뜨겁게 남아서 꼭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과연 그분들이 힘든 역경을 뚫고 오신 다음에 꿈꿨던 우리나라가 과연 그분들 한테 어떤 노스텔지어인지 이런 부분들을 보여 드리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 어요.


목숨 건 탈북과정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350석의 객석이 무대 위에 마련됐습니다. 빨간 객석 의자를 타고 넘는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는 관객들을 긴박했던 탈북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여1)
처음에 오프닝때 저 멀리 빨간 객석에서 탈북자들이 의자를 타고 넘어오는데 그게 너무 와닿더라구요. 우리의 탈북과정이 이렇게 이렇게 중국과 라오스 거쳐서 왔습니다(라는). 백마디 말보다 빨간 의자를 뛰어넘고 넘어지면서 다가오시는 배우들의 모습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여2)
탈북하는 장면에서 그렇게 힘들게 왔는데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게 그 전체적인 흐름이 보는 내내 힘들었었어요. 그들도 역시 같은 우리 민족인데 똑같이 봐야 하지 않나. 일단 공연을 통해서 조금은 부끄러웠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고 앞으로 그런 분들을 보면 보듬고 사랑으로 맞이할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가슴에 저마다의 꿈을 안고 사선을 넘어 도착한 곳. 대한민국! 하지만 연극은 ‘낯선 이방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애써 감춰왔던 어두운 면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체제가 다른 데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변화된 사회에서 상당히 적응하기 어렵고 나름대로 굉장히 고충이 있을 거라고 많이 느꼈습니다. 우선 문화에서 오는 차이. 그 다음에 경쟁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거기에서 오는 허탈감이라던지 .
(여6)
저는 또래니까 두 자매가 많이 인상 깊었는데. 저랑 똑같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일할 수 있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너는 탈북자니까 탈북자라서 너 때문에 우리도 피해를 봐 안돼. 이런 식으로 되는 게 불쌍하더라구요. 결국에는 안좋게 매춘이라든지 이런쪽으로 빠지게 돼서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그런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연극 제목에서 말하는 “날숨”의 의미는 남한 사회의 편견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호흡을 해야 하죠. 즉, 날숨과 들숨을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데요. 우리는 계속 뱉어내는 날숨만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아닐까?
탈북자 안미영 역의 장정선씨, 탈북자 김명호 역의 배우 윤제형씨입니다.

장정선
미영이가 처음에 남한에 와가지고 일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그냥 북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벌레 보듯이 피하려고 하고 너네 때문에 제대로 되는것도 없다. 이런 식으로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장면이요. 너무 가슴이 아프죠.


윤제형
미영이란 인물이 북한에 남아있는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서 결국에는 몸까지 팔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죠. 명호가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오열을 하게 됩니다. 그 장면이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고성운 연출가
제 느낌에는 저희세대가 통일세대가 될것같은 느낌이 있어요. 통일이 얼마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있고. ...사람으로 대접받는 꿈을 향해서 그분들은 넘어오신 분이고.... 전향적이고 조금더 호의적인 마음으로 그분들을 안아 준다고 할까요. 동포애.


여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강한 울림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여기 왜 오려고 했는지 알아?’ 이제 우리가 그들을 보듬어 줄 차례입니다.
날숨과 들숨으로 함께 호흡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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