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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구두수선으로 제2의 인생 설계하는 박영애씨

2018-01-11

구두수선으로 제2의 인생 설계하는 박영애씨
인천시 논현동의 일명 ‘먹자거리’ 중심가. 열심히 열쇠를 깍는 박영애씨 뒤로 도장파는 기계며 구두수선 재료들이 즐비합니다. 박영애씨는 열쇠면 열쇠, 도장이면 도장, 구두수선이면 구두수선, 못하는 게 없는 만능장인입니다.

열쇠, 도장, 그 다음 열쇠 다는 거 그 다음에 저거랑 신발 깔창도 팔고, 그 다음 고무인, 다 해요. 일체. 이제는 3년 됐어요 이거 살 때 대출이랑 받았으니까 그걸 다 갚고서는 이제부터는 노후 준비해야죠. 1년 반. 1년 반 하니까 다 갚았어요.

말투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박영애씨는 북한이탈주민입니다. 지난 2011년 탈북했는데요,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 젊었을 때 남편과 사별한 후 장사를 하며 가족을 부양해 왔다고 합니다.

청진이라는 게 북한에서 두 번째 도시에요. 북한에서는 큰 도시지. 거기서 장사하며 먹고 살았지. 쌀, 그 다음에 옥수수 국수. 그 장사하면서 살았어요.어렵게.. 제 가게라는 게 없으니까 북한에서는. 그저 장마당에 앉으면 장세 내고, 단속하고 하면 제돈 벌기 힘들죠

남한에 왔을 때 박영애씨의 나이는 50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박영애씨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은데, 새로 배우고 알아가야 할 일들은 태산 같았기 때문이죠. 일단 일자리가 급했습니다. 자동차 부품회사도 다녀봤고 미역 말리는 일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자격증이 있으면 취직이 쉽다는 조언을 듣고 요양보호사 학원에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있는 인천의 한 청소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그 때 박영애씨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요, 바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겁니다.

우리 아저씨 우연히 만났어요. 우리 아저씨 이런 가게 신발 수리하려고 갔다가 그러다가 혼자 산다고 그래서... 그러니까 우리 아저씨가 또 나중에 밥을 먹자고 초청했더라고. 그래서 자주 밥 먹기 시작하니까 그저 살게 됐어요.

당시 박영애씨는 새벽에 근무를 시작해 이른 오후에 퇴근하면 구수 수선일을 하던 남편은 한 창 일 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옆에서 일하는 걸 구경도 하고 거들기도 하다가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년은 배웠어요. 회사 다니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면 우리 아저씨랑 같이 10시까지는 가게에서 우리 아저씨 하니까 가게에서 배우고, 그 다음에 들어가서는 그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고, 또 저녁에 또 4시에 퇴근해서는 가게에 오고 이러다보니까 한 2년은 그렇게 배웠어요. 이걸 내가 빨리빨리 배워가지고 내 가게로 어떻게 빨리 쌓아야겠다, 라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했지. 열심히 배워가지고 가게를 사서 이거 하니까 엄청 좋아요.

이렇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배우면서 마침내는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된 겁니다. 박영애씨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다양합니다. 구두 수선 전문 가게지만 도장을 파러오기도 하고, 신발을 수선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또 박영애씨는 열쇠를 깍아주기도 하고, 직접 열쇠를 설치하러 출장을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지난 3년간 박영애씨는 일하는 재미, 돈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서 가게를 쉰 적이 없습니다.

난 돈 버는 재미에 살아요. 돈을 이렇게 매일 매일 벌어서 거기다 차곡차곡 통장에 넣어놓는 재미. 그렇게 살아요. 아무래도 버는 족족 다 이렇게 모아놔야 적금도 하고, 모아놔야 되니까. 북한에서 와서 이렇게 열심히. 나는 솔직히 말해서 가게를 비우는 날이 없었어요. 일요일도 오전만 집에서 간단히 일하고 오후에 12시면 나오니까. 열심히 하고 잘해주니까 손님들도 많이 있지. 그래서 이렇게 나를 도와주려고 하고 어떤 때는 잔돈도 안 받아 가고 그런 사람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성실하게 일을 하다 보니 한 번 온 손님은 또 찾게 되고, 주변에 소개하는 경우도 많아서 박영애씨 가게는 손님이 끊이질 않는데요, 단골들은 늘 박영애씨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구두 맡겨서 수리한 건데요. 알맞게 잘 고쳐주시고 친절하시고, 항상 부지런 하세요. 하나도 안 쉬고 일하세요. 쉬지 않고 일하세요. 열쇠도 저희도 다룬 적 있는데 꼼꼼하게 잘해주세요. 열쇠도 직접 다루시고, 신발도 직접 다 하시고 여자로서는 의외로 잘 하시더라고요. 거의 남자 분들이 하시는데. 잘하세요. 낯선 땅에 와서 적응 잘하시면서 열심히 사시니까 보기 좋아요. 지금처럼 열심히 하시면 분명히 대박 나실 거예요.

가게를 연지 3년째. 박영애씨는 현재 하루 하루가 행복합니다. 자본금이 많이 들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고, 혼자하는 사업이라 인건비도 들지 않고, 자기 기술이 있으니까 평생 일할 수 있고, 거기다 매출도 만족스럽습니다. 또한 앞으로 전망도 괜찮아서 사업 확장도 생각중이라고 하는데요, 박영애씨는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북한이탈주민들도 적극 도와주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사람들도 그렇고, 여기 사람들도 나이 먹으니까 이걸 배웠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저기 서울 쪽에도 옷 가게를 하는데 나한테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잘 가르쳐줬어요. 북한에서 같이 온 아줌마 있단 말이에요. 그 아줌마도 전화 왔더라고. 나도 하고 싶은데 언니 어떻게 배워줄 거예요? 응, 배워줄게, 오라. 그런 건 우리 북한 여자들이 오면 응 배워줄게 이래요. 나는. 그저 좋은 마음으로 그저 그 사람들 정착 잘하게끔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이 기회 이상 없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도 이걸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할 일이, 여기 와서 할 일은 그저 이걸 내가 정착을 잘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내가 배워줘가지고 이렇게 가게까지 사주는데 까지는 해주겠다고

박영애씨는 남한에 와서 평생지기인 남편도 만났고 사업도 잘 되고 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향 생각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박영애씨는 자신같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잘 정착해서 사는 것이 통일을 앞당긴다고 믿고 있는데요, 그런 박영애씨에게 새해 소망을 물어봤습니다.

2018년에는 돈 더 많이 벌어가지고 자식들이랑 남편이랑 같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요. 제주도도 가고 싶고, 한국 땅에 저 남한 땅이랑 많이 가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한 10년 돈 벌어서 전라남도 쪽에 가서 집 지어가지고 거기서 그저 편안히 지내고 싶어요. 그 쪽으로 가서 땅도 사서 농사짓고 싶어요. 우리 아저씨하고 그랬어요. 나중에 우리 여기서 10년만 벌어가지고 가서 농사짓고 싶다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이뤄지게 해야죠. 이제부터 열심히 한 10년 정도만 벌면 그렇게 되지. 그렇게 될 수 있지.

돈 많이 벌어서 여행도 하고 노후에 살 집도 짓겠다는 박영애씨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응원하면서 오늘 <목요진단 한반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임수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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