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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방송인 강나라의 좌충우돌 남한정착기

2018-01-18

방송인 강나라의 좌충우돌 남한정착기
북한이탈청년들의 삶을 다룬 뮤지컬 ‘달콤한 철쭉’. 지난해 11월에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인데요. 주인공 은아역을 맡았던 강나라씨는 가끔씩 대본을 펴보면서 그 때를 추억합니다.

<달콤한 철쭉> 끝나고 그런 게 있었어요. 되게 여운이 남아가지고 좀 대본을 만지작거리는 그런 게 있었어요. 같이 저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거에 되게 두려움이 많아요. 제가 북에 가족도 있고 하니까 좀 떠나서 살잖아요. 그래서 여기 와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한 달
동안 같이 있다가 또 헤어지게 되니까 이 달콤한 철쭉에 대한 여운이 더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을 막 집에 있을 때 펼쳤다 열었다 이랬던 적도 있었어요.


강나라씨는 현재 방송일을 하면서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 열 여덟살이던 지난 2014년에 한국에 왔는데요. 신세대답게 남한에 대한 정보는 드라마를 통해서 얻었다고 합니다.

저는 북한에 있을 때 한국 노래도 많이 듣고, 그 다음에 이제 한국 드라마도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꽃보다 남자>를 되게 재미있게 봤거든요. 10대 때 봤으니까. 잘생기고 예쁜 언니들만 나오잖아요. 옷도 되게 예쁘고 거기서 나오는 교복 모양을 치
마를 드라마처럼 올려 접어서 입고 막 그랬던 적도 있어요.


강나라씨에게 현실의 남한은 드라마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물론 먼저 남한에 정착한 어머니덕분에 생활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낯선 환경은 불편하고, 이곳 사람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활 하나하나를 애써서 배우고 익혀야했습니다.

저는 언어가 제일 어려웠어요. 언어가 제일 어려웠던 게 처음에 왔을 때 마트 이런 데 가도 내가 이거 얼마예요? 계산해주세요. 이런 말 하면 내가 북한 사람이라는 걸 알지 않을까? 사람들이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나를 또 마냥 조금 이상하게 볼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벙어리 시늉도 많이 내고 그 다음에 문화적인 게 조금 이제 아무래도 많이 다르고 그 다음에 백화점 같은 데 가면 되게 화장실 사용법도 잘 모르고 그래서 화장실 보고 그냥 나온 적도 있고... 되게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그러나 강나라씨는 적응도 빨랐습니다. 마치 스펀지처럼 새로운 정보를 흡수했고, 이젠 낯선 환경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하는데요, 그런 나라씨에게 남한에 살면서 좋았던 것이 무엇인지 물어왔습니다.

사회주의 사회와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는 내가 번, 일한 만큼 내가 수입이 들어온다, 그거더라고요. 어린 나이에도 일할 게 있고, 돈이 급하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고... 그런데 북한 같은 경우에는 월급제다 보니까 월급도 그 월급으로 쌀 2kg도 못 사요. 그러면 월급을 바라
면서 사람들이 사는데 그 뒷돈 챙기며 사는 거죠. 북한은 아르바이트가 없잖아요. 저는 여기 와서 아르바이트가 되게 좋았어요.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어서 좋다는 강나라씨~ 정말 신세대다운 대답이죠? 강나라씨는 북한에서 청진예고를 졸업하고, 청진예대를 다니다 탈북했습니다. 예술 다방면에 관심도 많은데다 재능도 남달랐던 나라씨의 꿈은 가수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의 꿈도 가수였죠. 기쁨조 이런 데 가는 게 꿈이었죠. 북한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여기 와서도 가수를 하려고 했는데 창법이 달라가지고 가수를 할 수 없어가지고, 가수는 창법이 일단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은 대부분 뽕삘이 있어서 트로트 쪽으로
나가야 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조금 어리기도 하고 워낙 트로트 가수들도 많잖아요. 그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거기 설 무대가 있을지 그게 고민이 제일 컸어요.


그렇게 강나라씨의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 답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대에서 노래 대신 연기를 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그래서 서울예술대학 연기과에 2017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동기가 150명 정도가 되는데 같은 수업을 다 듣는데 아 내가 과연 이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좀 걱정이 제일 앞섰거든요. 앞서고 수업을 처음 들을 때 되게 어려웠어요. 못 알아듣는 말도 많고, 1학기 동안 공부하고 나니까 조금 괜찮아지더라고요. 그 다음 2학기부터는
조금 재미를 가지고 공부하게 됐어요. 저는 발음을, 발음이랑 억양을 좀 많이 고치려고 노력했어요. 북한에서 온 그 억양이 있는데 그 억양을 고치긴 고쳤지만 그래도 내가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게끔 까먹지 않게 가지고 있고, 발음은 계속 드라마 같은 거 보면서 조금 따라하거나 연예인 입모양을 따라하거나 그런 적이 많았어요.


강나라씨는 대본 연습을 하면서 틈틈이 영화 오디션도 보러 다녔습니다. 텔레비전에도 출연했고, 또 주변에서 연기잘한단 칭찬도 종종 듣는터라 기대를 갖고 참가했지만 번번히 탈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오디션마다 쫒아다닌 결과 비록 단역이지만 벌써 두 편의 영화에 출연도 했습니다.

오디션도 요즘은 1차, 한 번만 보는 게 아니라 한 3차까지 보더라고요. 그런 오디션을 한 몇 번 봤어요. 그런데 떨어진 적도 많고 조금 실망감도 크긴 했어요. 조금씩 노력한 결과 출연도 할수 있었는데요 <종이비행기>라는 작품은 여기 10대 청소년들이 연예계 데뷔하는
그런 모습을 그린 건데 거기서 저는 북한 평양에서 온 학생이었고요. 걸그룹을 준비하는 학생 역을 맡았었고, <스윙키즈>라는 영화에서는 제가 그 영화가 6.25 전쟁 때 영화에요. 그래서 제가 북한 여군으로 좀 욕쟁이 같은 역할로 나옵니다. 그 때 한 단역이니까 대사가 다섯 마디 이상이 안돼요. 한 세 마디, 네 마디인데 너무 어려운 거예요. 암기하는 게... 내가 남보다 암기속도가 느린가? 아니면 저 주연 배우들은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외울까? 이런 세, 네 마디도 너무 긴장되어가지고 외워 안 되가지고 진짜 아침에 가서 대본을 받아서 하루종일 쥐고 외워가지고 겨우 촬영을 하고 그랬는데 하고 나니까 되게 시원하더라고요. 되게 좋았어요. 힘들었긴 했지만.


이렇게 강나라씨는 연기가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면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습니다.
한창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많은 이십 대 젊은이, 강나라씨에게 통일은 어떤 의미일까요. 강나라씨에게 통일이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통일이 되면 저희 친구들하고 같이 이렇게 KBS나 전국노래자랑 이런 데 가서 같이 노래 부르고 싶어요. 제가 가수였잖아요, 꿈이. 그래서 제 친구들도 북한 TV에 나오고 그런 친구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들과 함께 다시 어릴 적 그런 마음으로 같이 노래불러보고 싶
어요.


통일이 되어 고향의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싶은 강나라씨의 그 바램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 <목요진단 한반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임수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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