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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판소리 명창 박애리

2017-01-24

9살 때부터 판소리와 인연을 맺어 30년 동안 한결 같이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 지냈다는 박애리! 국악 신세대로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온 명창 박애리는 그의 소리의 기본은 언제나 전통 판소리라고 말한다.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판소리 외길을 걸어온 명창 박애리의 삶을 조명한다.



9살 때 판소리 처음 듣고 감동
박애리가 처음 판소리를 접한 것은 9살 때였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목포시립국악원에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노래 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국악원 단원들이 판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에 끌려 훌쩍 훌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무언지 모를 매력에 끌려 그날부터 박애리는 판소리를 배우기로 결심을 했다.

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목포시립국악원을 다녀온 후 소리를 배우러 다녔다.
오가는 길에 늘 혼자서 소리를 중얼거렸다. 국어시간에 배우는 시조도 소리로 바꿔 불렀다.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학교 오가는 길 , 쉬는 시간에 박애리의 입에선 늘 소리가 흘러 나왔다. 판소리에 빠져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실력도 부쩍 늘었다.
중학교 1학년 음악 콩쿨에서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대학교 2학년 때 동아국악콩쿨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음악 콩쿨에서 박애리의 소리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
1999년 1월 1일 국립창극단에 입단을 했다. 신입단원 시절부터 박애리는 주목을 받았다.
갑오동학혁명을 재구성한 창극 ‘천명’에서 신입단원들은 주로 막 뒤에서 부르는 합창이었다. 당시 박애리의 재능을 눈여겨 본 손진책 연출은 박애리에게 피난 가는 여인, 전봉준 장군을 따라가는 농민 등의 단역을 시켰다. 의외로 박애리는 주인공 못지않게 단역들을 잘 소화했다.

2015년까지 1000회 넘는 공연
박애리는 2015년 국립창극단을 떠날 때까지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해 우리 소리의 매력과 가능성을 대중에게 전파하는데 기여했다.
그간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명창 박애리의 존재를 알렸다. 기본적인 전통 공연 외에 판소리 가사 일부를 마임으로 바꾼 ‘마임 판소리’, 대중가요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열린 마음으로 판소리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
“전통 보존에 대한 강한 열망, 전통의 소리를 알리기 위해 변신을 위한 다양한 도전! 이것이 박애리의 국악이 재미있는 이유다!” 라고 남편인 팝핀현준은 말한다.
박애리의 소리와 무대는 모든 장르에 열려있다. 그러나 언제나 근본은 전통 판소리다.
올해 41세인 박애리는 전통에 더욱 충실하면서 새로운 시도와 함께 자신의 판소리를 재능있는 후배들에게도 기꺼이 전수하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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