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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돌담길, 예천 금당실 마을

2014-10-31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돌담길, 예천 금당실 마을
예천은 단술 醴(예) 자에 샘 泉(천) 자를 쓴다. 물맛이 단술과 같다는 뜻이다. 이렇게 물맛이 달고 산천이 아름다운 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문득 궁금해진다. 흙돌담과 굽이굽이 골목 안 고택들이 액자 속 풍경 같은 금당실 마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본다.

미로 같은 7.4km의 돌담길

금당실 마을의 돌담은 아름답다. 볏짚과 황토를 이용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담은 구불구불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그 사이 사이로 반송재 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 사괴당 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터 등이 숨은 듯 자리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돌담을 따라 마을구경을 하다보면 자꾸만 걸음이 느려진다. 게다가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돌담 너머로 살짝살짝 보이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는 자꾸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돌담이 7.4km, 거미줄처럼 온 마을을 휘감고 있어 초행길이라면 미로처럼 이어지는 돌담에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물건을 팔러왔던 방물장수가 길을 잃어 열세바퀴나 돌았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돌담을 타고 오르는 호박 넝쿨과 그 발치에 핀 맨드라미를 구경하노라면 일부러라도 길을 잃고 싶은 곳이다.

돌담 속 한옥에서의 하룻밤

방물장수처럼 정말 길을 잃는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가는 나그네를 재워줄 집은 얼마든지 있는 금당실 마을이다. 그렇다면 삐그덕 소리 나는 나무대문을 열고 사괴당 고택으로 발을 들여 보자. 원주 변씨와 함양박씨의 집성부락인 금당실 마을에서 사괴당 고택은 원주 변씨인 사괴당 변응녕의 집이다. 위화도 회군 때 이성계가 술 한 잔 권하며 하여가를 읊자, 정몽주는 단심가를, 변안열은 불굴가를 읊으며 지조를 지켰던 충절의 집안이다.

<불굴가> - 변안열

穴吾之胸洞如斗(혈오지흉동여두) 내 가슴에 말인 양 둥그렇게 구멍 뚫어

貫以藁索長又長(관이고삭장우장) 새끼줄로 길고 길게 꿰어서

前牽後引磨且戛(전견후인마차알)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끌어 갈리고 두들겨져도

任汝之爲吾不辭(임여지위오부사) 네가 하는 대로 두고 나는 다 받겠지만

有欲奪吾主(유욕탈오주) 우리 임 빼앗으려하면

此事吾不屈(차사오부굴) 이 일은 내가 굽히지 않으리

대문채에는 디딜방아와 문간방이 있고 남향인 안채는 막돌을 쌓은 기단 위에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안방과 안대청을 중심으로 서쪽 날개집에는 찬방과 부엌, 곡식과 씨앗을 저장하는 고방이 있고 동쪽 날개집에는 마루방·온돌방이 있다. 부엌 위에는 다락이 있는데 독립운동을 위한 소총 350여점이 나왔고 서쪽날개 가장 뒷방은 집안 어르신의 방이다. 이런 저런 집의 내력을 듣는 저녁시간이 무척 흥미롭다. 지나가는 객이니 초당 문간방에 신세를 져 보자. 여름이 다가와도 새벽녘에 때주는 뜨끈한 군불이 좋다. 말린 꽃을 사이에 넣고 함께 바른 한지 문짝으로 은은히 달빛이 넘실댄다. 타닥타닥 모깃불 소리도 좋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포근한 한옥이 살포시 품에 안고 달디 단 잠에 빠져들게 한다.

포장 하지 않는 마을, 자신 있는 마을

이른 아침의 금당실은 새벽안개를 감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금당실 쑤’라 부르는 마을 입구 금당실 솔숲은 그 중 인상적이다. 조선과 러시아 그리고 금광에 얽힌 이야기가 새벽안개처럼 서려있으니 마을 어르신께 직접 들어보자. 그리고는 언덕처럼 가뿐한 오미정으로 아침 산책길을 잡아보자. 오미정에 오르면 아름다운 한옥이 물결치는 금당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백산 능선의 산자락과 낙동강 줄기인 내성천이 서로를 부여잡고 산태극 물태극을 그리는 회룡포의 비경보다 예쁘고 세 개의 강줄기가 만난다는 삼강주막의 풍취보다 멋지다. 북쪽의 매봉, 서쪽의 국사봉, 동쪽의 옥녀봉, 남쪽의 백마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양은 물에 떠있는 연꽃, ‘연화부수형’이다.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곳을 ‘승지’라 하는데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 언급된 우리나라 십승지 중 하나가 바로 이곳 금당실 마을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에도 피해가 없었으며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곳이니 금당실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부러워진다. 그래도 하룻밤을 잤다고 금당실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이제 돌아가 아침상을 받을 생각을 하면 더욱 행복하다. 이 마을에서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 '영어 완전 정복' '황진이' 등을 촬영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관광객의 입맛에 맞추고 잘 보이려 포장하는 관광지가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한 금당실 마을이다. 그래서 이 마을이 더욱 맘에 든다. 조선시대의 ‘시간’이란 놈이 금당실 마을에 들어왔다가 방물장수처럼 길을 잃고는 아직까지 헤매는가 보다. 오랜 돌담과 기와와 사람이 마냥 좋은, 시간의 그림 같은 금당실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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