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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250년 역사의 땅 전주 한옥마을

2014-11-28

1250년 역사의 땅 전주 한옥마을
부드러운 기와장의 이어지는 한옥의 바다, 요리조리 골목길이 고불고불.. 전주한옥마을은 아이들과 걸으며 이집 저집 거리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전주로 향하는 걸음, 화창하게 맑은 날 만경창파 푸른 물에 배 띄워 떠나가는 형상이라는 전주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영화와 낭만의 도시
누가 전주를 고풍스런 도시라고 했던가. 또 누가 전주를 대표하는 것이 비빔밥과 콩나물 해장국이라 했던가. 전주는 이제 영화의 도시이고 낭만의 도시이고 팝콘의 도시다. 증거를 대보라고? 그럼 우리 손을 잡고 고사동으로 가보자. 전주 사람들의 만남장소인 객사 뒤편은 걷고 싶은 거리, 그 길을 따라 가면 전주영화비가 있고 그 앞으로 ‘영화의 거리’라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영화의 거리? 길을 걸어보면 그 답이 보인다. 가장 먼저 왼편으로 검고 단단한 미소의 메가 박스가 자리한다. 다시 길을 걸으면 거리의 가로등마다 전주국제 영화제의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며 눈앞에는 영화관들이 줄을 선다. CGV 전주, 아카데미아트홀 그리고 기역자 모퉁이에 전주시네마가 위풍 당당히 서있고 그 옆에 평화극장, 다시 모퉁이를 돌면 프리머스 시네마가 있다. 그렇다. 이곳은 크고 작은 영화관들이 줄줄이 서 있는 명실상부한 영화의 거리인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이곳에 영화관이 이리 많이 생겼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CGV전주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한 낙원장 모텔은 생긴지 12년, 이집 주인장인 이상권 씨는 지금의 낙원장을 하기 전에 CGV 바로 옆에서 통닭집을 35년간 했으니 아저씨의 기억만으로도 50년은 족히 되었다. 당시의 영화관은 이름이 달라 코리아 극장, 명보극장, 피카디리 극장 대한극장 등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이름으로 서 있었다. 전주시의 중앙지역으로 사람들의 통행이 잦아 영화관도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이다. 그러다 전주 외곽지역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상권이 시들어가던 2001년 전주 국제 영화제가 생기면서 코리아 극장과 뉴 코리아 극장은 전주 시네마로, 씨네 21은 프리머스 시네마로 또 대한극장은 메가박스, 피카디리 극장은 CGV 전주 등으로 일대 변신을 하니 한두 개였던 상영관을 십여 개씩으로 늘리고 각종 편의 시설이 빵빵한 복합영화관의 최첨단 극장가로 변신한 것이다.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시작된 한옥마을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인들이 한국 땅에 대거 몰려들었다. 전주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니 일본인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서문 밖쯤에 거처를 마련했다. 지금의 다가동 근처 전주천변이었다. 당시 전주는 한양처럼 전주부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전주부성은 1934년 1월에 시작해 약 20척(1척=20.83㎝)인 4m의 높이로 쌓았으니 임진왜란 당시 이정란이 성을 지키며 왜적을 물리치던 곳이다. 급히 들어온 일본인들은 빈집이 없는 성안에 집을 구하지 못했다. 기름지고 맛날 쌀 등 양곡을 수송하기위해 일본은 1907년부터 전군가도를 개설하며 전주성을 철거했다. 1911년 말쯤에는 남문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전주부성이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지금 남아있는 풍남문(보물 제308호)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흔적이다. 이로써 성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졌으니 일본인들은 성안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서문 밖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중앙동 쪽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에 의해 전주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자 전주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중앙으로 몰려드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아름다우니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로 전주 사람들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자존심의 발로인 것이다. 잠시 전주한옥마을을 빙 둘러 풍남문을 비롯한 4대문과 전주부성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한옥마을의 꽃, 경기전
전주부성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감을 안고 전주한옥마을을 걷다보면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동, 오목대, 향교, 견훤성터, 남고산성 등 문화유적지, 전통문화센터, 공예품전시관, 명품관, 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전주전통한지원, 한방문화센터 등 볼거리 할거리, 즐길거리, 살거리가 풍부해 어느 곳을 먼저 들려야할지 난감해진다. 하지만 전주한옥마을 일번지는 역시 경기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기전 경내에는 보물 제931호로 지정된 이성계 어진과 유형 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조경묘가 있다. 경기전을 돌아볼 때는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은데 경기전 입구에 있는 하마비부터 유심히 보자. 지대석 위에 쭈그려 앉은 두 마리 사자가 받침돌을 등 위에 받치고 있는 하마비가 있다. 이렇게 두 마리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하마비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형태로 상당한 격식을 차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면의 앞면에는 "여기에 이르렀거든 누구든 말에서 내려라. 잡인은 들어오지 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경기전에는 예종의 태실과 태실비도 만날 수 있는데 태실비 몸돌 앞면에는 '예종대왕태실'이라고 적혀 있다. 이 태실과 태실비는 원래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태봉산에 있던 것을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으로,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6호다.

전주한옥마을에서의 고택 스테이
전주한옥에서는 고택체험 또한 가능하다. 양사재는 원래 전주 향교의 부속 건물로 서당 공부를 마친 청소년들이 생원·진사 시험공부를 하던 곳이다. 1897년 전라북도 공립소학교 (현재의 전주초등학교)가 이곳에서 문을 열었으며 전북대 문리과대학의 전신인 명륜 대학의 사택으로도 쓰여 이 대학의 국문과 교수이던 고 가람 이병기 시인이 1951∼56년 이곳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때 구들장을 덥히는 전통 난방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방금 전 유생이 앉았던 듯, 가람 이병기 시인이 다녀간 듯 흑갈색으로 그을린 구들장에 온기가 남아 있다.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역시 숙박이 가능한데 아침에 눈을 뜨면 방 한 구석의 경대며 문갑 병풍이 항상 그곳에 있었던 듯 친근하다. 창호지 바른 문짝과 문살 그리고 은은히 스며드는 햇살과 툇마루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안채 대청에서 받는 오첩반상은 방짜유기에 찌개 김치 생선이 담겨있으니 반가 사랑채에 하룻밤 유하는 선비가 되는 듯하다. 자전거를 타고 전주한옥마을을 돌아보면 더욱 여유스럽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자취
한옥마을을 걸으며 발품을 팔다 쉬고 싶으면 전주한방문화센터로 가보는 것도 좋다. 한의학 진단체험을 통해 자신의 사상체질을 체크해 볼 수 있다. 한방차 한잔 마시며 한방약족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다. 제대로 된 찻집을 원한다면 '교동다원'도 좋다. 차를 마시면서 한옥의 멋스러움을 음미할 수 있는 전통찻집으로 벽난로와 아궁이를 절충한 특이한 난방은 일본 중국의 건국과 교수들이 감탄한 작품이다. 전주천변 한벽루 곁에 자리한 전통문화센터는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를 즐기고 체험하는 문화공간이다. 판소리, 기악, 무용, 사물놀이, 퓨전국악 등이 놀이마당에서 신명나게 펼쳐진다. 경기전과 돌담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제대로 된 전주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종로회관이 근사하고, 작가 최명희의 생가 터와 소설 "혼불"에서의 전주 최씨종택도 전주한옥마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코스다. 천천히 걸으면 TV 역사드라마 "용의 눈물"과 "명성황후" 촬영장이던 경기전이 보이고 길 건너에 전동성당이 우아하다.

한지를 만나요
경기전에서 나오면 태조로 양편으로 한옥과 골목이 이어지는 데 전주전통술박물관, 전주전통한지원 등 돌아보고 체험할 곳이 많다. 전주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한지인데 소규모 한지생산 공장들이 이곳 한옥마을에 자리한다. 각기 소규모 전시관과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어 재미를 더한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전통주들이 모두 모여 있다. 전통주의 제작과정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과 더불어, 막걸리(탁주)와 청주가 같은 술독 안에서 얻어지는 과정, 청주가 불을 만나 소주가 되는 절차 등을 상세히 공부할 수 있다. 술밥 비비기·소주 내리기 등 전통 가양주 만드는 과정(11주)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전통주를 시음할 수 있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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