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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비빕밥과 논개로 유명한 경남 진주의 진주성

2016-02-20

경상남도 진주에는 왜군의 침략에 끝까지 항거한 진주성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왜군과 함께 바다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버린 절개의 상징 ‘논개’에 얽힌 이야기 등 의미 있는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진주 일원을 소개한다. MC 류시현, 매일경제 신익수 여행전문 기자, 이동미 여행 작가가 함께 한다.

처절한 항쟁의 터 ‘진주성’
진주성은 진주 지역민들이 왜군의 침략에 맞서 처절하게 항쟁했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1592년 왜군의 1차 침략에서는 우리 군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듬해 왜군은 전열을 정비해 10만 대군을 이끌고 전라도 곡창지대로 이어지는 진주성을 차지하기 위해 침공했다.
이에 맞서 군민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전력의 열세로 조정은 싸우기를 포기했다. 경상도 의병사 최경회 등 장수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에도 진주 지역민들은 끝까지 왜군에 대항해 일주일을 더 버텼다. 진주성이 완전히 함락되기 하루 전 진주의 백성들은 한 자리에 모여 소를 잡고 마지막 잔치를 벌였다. 다섯 가지 나물에 고추장, 그리고 육회를 얹어 비빔밥을 만들고 선지를 넣은 소고기국을 끓여 마지막 잔치를 벌였다.
이 마지막 잔치에 나눠먹은 음식이 ‘진주비빔밥’으로 아직도 전주비빔밥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 비빔밥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진주비빔밥의 특징은 다섯 가지 나물 위에 육회를 올린다는 것이다. 또 선지 소고기 국이 따라 나온다.



논개의 슬픈 이야기
진주성 함락으로 의병사 최경회 등 장수들이 자결하고 왜병들은 진주성 정복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연을 촉성루에서 열었다.
당시 최경회의 부실(기생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최근 발견된 ‘해주최씨문집’에는 논개가 최경회의 부실로 기록돼 있다.)이었던 논개는 왜장을 끓어안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논개가 왜장과 함께 떨어진 바위를 ‘의암’으로 부른다. 당시 논개의 나이는 20세 였다.
논개의 이야기는 역사 속의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목격했던 사람들이 구전으로 전하고 있다.

‘가뫼골체험마을’도 가볼 만
진주 시내 옆 쪽에 ‘인사동’이란 곳이 있는데 각종 골동품, 전통 공예품들이 전시돼 있어 구경할 만하다.
또 ‘가뫼골체험마을’에 가면 ‘우리 콩으로 메주담기’ 등 다양한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다. 20km 정도 이어지는 소나무 길도 있어 조용히 산책하며 오래된 시골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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