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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남 의령

2016-06-04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한 민초들의 뜻을 하나로 결집하게 해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을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안내한다.
바로 곽재우 장군이 태어난 곳 경남 의령이다. MC 류시현, 매일경제 신익수 여행전문 기자, 송일봉 여행 작가가 함께 한다.



곽재우 장군의 생가가 있는 곳
홍의장군으로도 기억되는 의병장 곽재우는 1552년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관리에서 태어났다. 곽재우 장군의 생가가 아직도 보존돼 있다.
곽재우는 조선시대 행동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 외손녀와 결혼했다. 남명 선생은 늘 실천을 강조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는 스승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겨 분연히 의병을 일으켰다.

6월 1일은 ‘의병의 날’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조선의 관군은 전혀 대비가 없었다.
공격하는 왜군들에게 계속 패하며 도망하는 왜군을 보고 곽재우는 마을에 있는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아 치며 의병을 모집했다. 지금도 당시 북을 매달았던 큰 느티나무가 남아있다. 의병을 최초로 모집한 날이 1592년 음력 4월 22일로 양력으로 치면 6월 1일이다. 이날을 기념해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했다.



기강 나루터 전투 등에서 왜군들에게 큰 타격
의병들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왜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였다.
곽재우 장군은 기강 나루터 전투에서 썰물 때 강바닥에 나무 말뚝들을 박아 놓았다. 밀물을 이용해 나루터로 향하던 왜군의 배들이 말뚝에 가로막혀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를 이용해 의병들이 총 공세를 펼쳐 승리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의령을 교두보로 삼아 호남 곡창 지대로 진격하려던 왜군을 맞아 정암진 나루터 전투에서도 나무 말뚝으로 왜군의 배를 강 깊은 지점에 가둬놓고 왜군의 조총에 맞서 사거리가 긴 활로 승리를 거뒀다. 임진왜란에서 패배한 후 왜군은 가장 큰 패인을 이순신과 곽재우로 꼽을 만큼 곽재우 장군의 공이 컸다. 의령읍내 충익사에는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장수들을 기리는 위령탑과 위령비가 있다. 또 곽재우 장군이 입었던 붉은 갑옷 등 유물도 전시돼 있다.

자굴산 ‘치유수목원’
의령에 있는 해발 897미터의 자굴산에는 산림청이 지정한 제 1호 ‘치유수목원’이 있다. 황칠나무, 가뭄비 나무, 회양 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오르는 길도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고 간간히 나무로 만든 안전시설들이 있다. ‘치유수목원’에는 부채 위에 그린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돼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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