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케이티엔지(KT&G)와 한국 필립모리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 코리아 등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낸 53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대법원의 과거 판단을 넘지 못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는 2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케이티엔지(KT&G)와 한국 필립모리스,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앞서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암에 걸린 환자 중 30년 이상 흡연했고, 2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흡연한 환자들에게 공단이 2003~2013년 추가로 진료비를 부담했다며 537억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담배 회사들의 불법행위 내지 담배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추가적인 지출을 했단 겁니다.
2014년 9월 첫 재판이 시작됐고, 공단은 각 대상자에 대한 요양급여 내역 자료, 의무기록 분석 자료와 흡연 관련 연구자료 등 1만 5천쪽에 달하는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담배회사들은 자료를 검토할 시간을 요청했고, 재판은 2018년 중단됐다 지난 8월 다시 시작됐습니다.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유해성을 인정하면서도 "흡연이 폐를 포함한 호흡기에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사회 전반에 널리 인식되었으며 흡연을 계속할지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고 판단한 지난 2014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맞섰습니다.
개인의 선택일 뿐 담배 회사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담배회사 측은 공단의 역학연구결과 자료만으로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공단 측이 개별적 사정들(흡연시기, 흡연 전 건강상태, 생활습관, 가족력 등)의 증명을 통해 흡연으로 폐암 등이 발병하였을 개연성을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단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한 건 '국민건강보험 가입에 따른 보험관계'에 따라 지출된 것일 뿐, 담배 회사들의 행위와 비용 지출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또 담배에 결함이 있다는 건보공단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니코틴이나 타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거나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이를 채용하지 않은 것 자체를 설계상 결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담배 회사들이 법률의 규정에 따라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표시하는 외에 추가적인 설명이나 경고 기타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담배에 표시상의 결함이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습니다.
핵심 쟁점이었던 건보공단 가입자가 앓고 있는 질환과 흡연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 여부 역시 과거 대법원의 판단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가입자들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과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하여 그 자체로서 양자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되었다고 단정하거나 원고가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을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건보공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담배 회사의 책임을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건보공단은 즉시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오늘 판결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판결"이라며 "건보공단이 그동안 담배의 명백한 피해에 대해서 법률적인 인정을 받으려 노력했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999년 담배회사들이 중독성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첨가물을 넣거나 소비자에게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며 46개 주 정부가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2060억 달러(한화 약 228조원)의 합의금을 받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