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대한민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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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부-청계천, 사람과 자연의 품으로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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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도심 사이로 물이 흐른다. 서울시 종로구와 중구를 가로지르는 10.84 킬로미터의 청계천이다. 2005년에 복원된 청계천이 서울을 대표하는 서울 시민들의 쉼터이자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청계천 복원에 관한 이모저모를 조명한다.

서울의 역사와 함께 한 ‘청계천’


청계천의 역사는 서울의 역사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을 수도로 정한다.
한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큰 비가 오면 빗물이 지대가 낮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범람하곤 했다.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태종은 즉위 초인 1406년부터 적극적으로 서울의 수로 정비에 나섰다. 청계천이란 서울의 인왕산 부근에서 발원된 ‘청풍계천’이란 물줄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청계천은 조선 시대 때 도성 안의 하수구 역할을 했다. 비가 오면 맑은 물이 흘러가고 평상시에는 도성 안에서 나오는 생활하수가 나가는 통로였다.

한국 전쟁 이후 오염 심각


청계천 일대는 시장이 형성되면서 상업의 중심지이자 활기 넘치는 문화교류의 장이 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살길을 찾아 상경한 가난한 사람들이 청계천 주변에 주거하면서 급격하게 인구 밀도가 높아졌고 청계천의 오염이 심해졌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월남한 피난민들이 청계천 일대에 움막을 짓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청계천의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전염병 위험, 화재 발생 등 위험을 막기 위해 1950년대 청계천 복개 공사가 시작됐다. 청계천을 아예 흙으로 묻어버린 것이다.

청계천 위로 고가도로 건설도


흙으로 덮어버린 청계천 위에는 도심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1967년‘청계고가도로’ 건설이 시작돼 1976년에 완공된다.
청계천의 도심구간인 광교에서 오간수교 구간이 땅속으로 묻히고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도 철거된다. 청계천 복개공사와 고가도로 건설은 근대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을 복원해야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된다. 역사학자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인 청계천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환경학자, 단체들은 환경학적 측면에서 청계천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시장 후보 공약, 당선 후 공약 실천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는 선거 공약 중 하나로 ‘청계천 복원 사업’을 발표한다. 당선 후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마침내 2003년 7월 1일에 공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2005년 10월 1일 청계천에 새 물길이 열리고 사라진 지 47년 만에 청계천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복원된 구간은 청계광장과 성동구 신답 철교 사이의 5.84킬로미터, 이곳에 25만 km2의 녹지도 조성됐다. 사라졌던 청계천이 다시 복원돼 서울시민들의 편안한 쉼터, 도심 속의 자연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