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 대한민국 이야기

Open the window of AOD제 46부-꿈과 땀으로 이룬 스포츠 강국

제 46부-꿈과 땀으로 이룬 스포츠 강국

20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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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한 때 침체기를 맞았던 한국의 스포츠! 그러나 1963년 한국 실내 스포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장충체육관’이 설립되고 1965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이 문을 열면서 한국 스포츠 중흥의 계기가 된다.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의 이모저모를 조명한다.




1960년대엔 권투와 레슬링이 최고 인기


여전히 먹고 살기 어려웠던 1960년 대, 한국의 권투선수, 레슬링 선수가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며 상대 외국 선수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한국민들에게 통쾌한 쾌감과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만홧가게와 다방들은 경기를 보려고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김일 선수는 세계타이틀을 차지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다. 1966년 6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는 김기수 선수와 이탈리아의 벤베누티 선수와의 WBA 주니어미들급 타이틀 매치가 열렸다. 이날 승리로 김기수 선수는 한국 최초의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 된다.

1970년대 한국 축구, 세계무대 진출


1970년대 축구도 인기 스포츠에 합류했다. 주로 아시안컵 등 아시아 지역 팀들을 상대로한 경기에 많은 관심이 집중됐고 한국 축구의 수준도 꾸준히 성장한 시기였다.
1972년 최연소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127 경기에 출전해 발군의 실력을 뽐내며 55골을 넣은 차범근 선수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축구 무대로 진출한다. 차범근 선수는 1978년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 리그에 진출한다. 10년 동안 무려 308 경기에 출전해 98골을 넣으면 독일 뿐 아니라 세계에 한국의 축구선수 ‘차붐’의 이름을 알렸다.

‘86 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계기로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


‘86 아시안게임에 이어 열린 ’88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세계 4강의 신화를 이룬다. 두 국제스포츠 축제를 통해 한국 스포츠는 기량 면에서 또 경험 면에서 많은 성장을 한다.
또 90년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스포츠 선수들이 보다 많은 국제 교류를 하게 된 것도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은 스케이트 쇼트트랙, 사격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른다. 1992년에는 한국의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는 쾌거를 올린다. 또 미국에 진출한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와 프로야구 박찬호 선수의 연이은 승전보가 이어지기도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등 스포츠 강국 면모 과시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에 오르면서 전 세계에 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알렸다. 이후 한국 축구는 박지성 선수의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리그에 진출해 눈부신 활약으로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 외에 2005년 국제무대에 데뷔한 후 숱한 기록을 세우며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우승을 차지하며 빙상의 여왕으로 한국 스포츠를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