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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2년 10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2018-08-23

한반도 리포트

ⓒ YONHAP News

2년 10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났습니다. 


(여) 언니~ 너무 고생했지 아이고 우리 언니 언니~ 언니~ 언니~

     

분단으로 오랜 세월, 남과 북으로 갈라졌던 가족들이 지난 20일부터 금강산에서 한 많은 이산의 아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26일까지 1, 2차로 나눠서 이루어지는 만남을 위해서 70년 가까이 인내해온 이산가족들. 그들의 눈물어린 재회와 이산가족 상봉이 남긴 과제를 최영일, 시사평론가와 생각해 봅니다.

  

<최영일. 남> 2년 10개월 만에 이산가족상봉 재개가 되는 상황인데요. 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이 핵실험을 연쇄적으로 하면서 완전히 차단이 됐었구요. 이것이 올 초에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측의 특사가 내려오고 4.27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지고 이 두 정상 간의 만남에서 인도적인 이산가족상봉은 즉시 재개해야 되지 않느냐는 우리 측의 제안을 븍측이 받아들이면서 여러 차례 조율 끝에 힘겹게 성사가 됐구요 (이산가족 상봉기간은) 20일부터 26일까지입니다만 1차, 2차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19일 일요일 저녁에 속초에 이산가족들이 모였습니다. 89명, 그러니까 90명이 조금 안 되게 모였는데 남북 간의 합의는 100명입니다. 그런데 11분의 상봉예정자가 마지막 순간에 상봉을 포기를 하셨어요. 그 이유는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이 고령자이시기 때문이예요. 자 그래서 월요일 8시 30분에 육로, 버스 편으로 고성을 출발해서 금강산까지 올라갔습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4·27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른 것으로 지난 6월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컴퓨터 추첨을 통해 1차 후보자 500명을 선정했습니다. 

이후 남북은 생사 확인 회보서 교환 등의 절차를 거쳐 20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1회 차 행사에는 남측 방문단 89명이 북측 가족과 만나고, 24일부터 26일까지 2회 차에는 북측 방문단 83명이 남측 가족과 상봉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한 달간 금강산의 상봉 장소, 식당, 숙소에 대한 보수 공사도 진행된 끝에 8월 20일 오후 3시.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첫 단체 상봉이 시작됐습니다. 


(유승원, 유관식씨 남측 아들) 기억나세요? 어머니, 항상 아버지가 맨날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만 찾으셨어요.

      

20일 금강산 상봉 행사장은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70년 가까이 생사조차 모르고 살았던 이산가족들은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부둥켜안았고, 기나긴 세월의 틈을 눈물로 메웠습니다.  

89명의 남측 이산가족과 동반 가족 등 197명이 북측 가족 185명과 만난 상봉장은 테이블마다 기구한 사연들이 이어졌습니다.


<최영일. 남> 가장 고령이 101세입니다. 백성규 할아버지신데요, 형제들이라든가 자녀분들을 만나지 못하셨어요. 누구를 만났는가 하면 며느리와 손녀를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얼마나 좋으시냐고 여쭸더니 ‘금강산만큼 좋다’ 이런 말씀을 남기셨어요. 그리고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경우는 유관식 할아버지의 경우입니다. 유관식 할아버지 80대 후반 되셨는데요 전쟁으로 부인을 북쪽에 두고 혼자 내려오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부인이 그 전쟁 중에 임신하고 있던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을 찾기 위해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고 북에서 그 가족을 찾았는데 이미 부인은 이 세상분이 아니셨고 출산한 딸이 있다고 알려온 거예요. 정말 얼굴도 모르던, 자신은 남쪽으로 내려오고 나서 북에서 출산된 이제는 할머니가 된 딸을 만나서 이 부녀가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정말 전쟁과 분단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영향을 미쳤나.


헤어진 지 70여년. 누구의 사연인들 애달프지 않을까요? 피난길에 헤어진 4살배기 아들과 68년 만에 재회한 어머니. 폭격을 피해 혼자 개성을 떠나면서 고향에 남겨뒀던 막내 동생을 만난 오빠. 전쟁으로 헤어진 아내가 자신의 딸을 낳았단 사실을 여든 아홉이 돼서야 알게 된 아버지.

가슴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아픔이 고개를 들고, 수 만 번을 곱씹은 후회가 눈물로 써내려간 서사시와도 같은 인생사를 풀어놓는 가운데 상봉 첫째 날이 저물어 갔습니다. 

 21일 다시 만난 가족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영일. 남> 둘째 날이 하이라이트였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전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별상봉이 이루어졌거든요. 그래서 객실마다 가족들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그 누구의 간섭이나 혹은 북측도 감시의 눈초리 없이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점심식사도 방마다 배달된 도시락으로 정말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모습이 최초로 연출이 됐구요 그리고 마지막 날 조금 이변이 일어납니다. 뭐냐 하면 2박 3일 동안 만남의 시간은 6차례 단 11시간으로 제한이 돼 있었는데요 이별을 아쉬워하는 가족들의 염원을 남북당국이 받아서 한 시간을 더 연장해 준 겁니다.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마지막 날은 마지막 오찬 두 시간의 만남이 예정돼 있었는데 오전 10시부터 만나는 것으로 한 시간을 더 연장을 해서 세 시간의 마지막 날 만남을 가지게 됐구요.


과거와 달리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정치적 색채도 많이 배제하고, 이산가족에 대한 배려도 두드려졌습니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은 피할 수 없죠. 2박 3일간 6차례에 걸쳐 12시간 동안 만남을 가졌던 이산가족들은 22일 오후 1시 28분, 귀환길에 올랐습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다시 헤어져야 하는 시간. 가족들은 차창 너머로 필사적으로 손을 맞잡고, 다시 만나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지만 이번 이산가족 남측 방문단 89명 중 무려 삼분의 일이 90세 이상.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을 생각할 때, 재회의 약속은 보는 이를 안타깝게만 합니다.


<최영일. 남> 저도 개인적으로 실향민 집안의 2세예요. 그래서 이제 북에 고향을 두고 내려오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이 이미 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이산가족상봉 실향민들의 재회를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은 느낌인데 가장 걱정은 이산가족상봉이 거듭해갈수록 헤어져있는 가족들은 점점 고령화되고 있다. 이게 확연히 느껴집니다. 이번 경우에도 직계 가족, 즉 부모 자식이 만나는 가족은 7가족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형제, 자매가 만나는 경우는 한 20여 가족에 불과했다는 거구요 나머지는 결국 조카, 삼촌, 고모, 이모들을 만나서 형제, 자매분들이 서로 나뉘어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생을 마감하셨는지를 옛날 사진들을 조각 맞추기 하듯,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구슬로 맞춰가면서 확인해가는 더듬어가는 과정들을 복기하는 가족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생전에 만나게 해드려야 하는 의무와 과제가 남북 모두에게 또 우리 공동체 모두에게 떨궈져 있는 게 아닌가.

 

1988년부터 통일부에 등록된 상봉 신청자는 13만 2,000여명. 그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5만 6,000여명이고 이 중 90세 이상이 1만 2,000명입니다. 이산 1세대가 빠른 속도로 세상을 등지면서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뿐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상시화 같은 합의가 이루어지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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