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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5년 만에 처음 실현된 JSA 비무장화

2018-11-01

한반도 리포트

ⓒ YONHAP News

남북의 군사적 긴장 완화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실현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 군사당국과 유엔군사령부가 공동 검증을 마치면서 지난 해 11월까지만 해도 북한군 병사 귀순으로 총성이 오갔던 JSA는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JSA 비무장화의 의미를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센터장과 짚어봅니다.

  

<신범철. 남> JSA 뜻이 Joint Security Area라고 해서 공동경비구역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정전협정을 체결한 다음에 정전협정을 감독할 수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을 설치를 한 거죠. 그런 시설을 설치하려다보니까 여기에 대해서 공동 경비를 하자. 그래서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이 공동으로 경비를 맡아왔던 거죠. 그렇게 유지가 돼오던 지역이 몇 번 분쟁을 통해서 각인 됐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이 JSA에서 이루어진 거죠. 미루나무 철거 과정에서 북한측이 유엔군측을 살해하는 일이 있어서 한반도의 긴장이 상당히 고조됐었던 적이 있었구요. JSA를 둘러싸고 남과 북이 긴장을 이렇게 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비무장화함으로써 남북 간에 신뢰구축을 하겠다는 그런 취지에서 이런 비무장화가 추진됐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 설정된 JSA는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동서 800m, 남북 400m인 정방형의 지역입니다.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이름 그대로 남과 북 양측 군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던 JSA는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분단의 상징이 됐습니다.

콘크리트로 된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만들어지고, MDL을 넘어선 통행 금지는 물론 남북 초소가 분리된 분할경비구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로 인해 JSA는 1984년 소련 관광객 월경, 2017년 북한군 병사의 탈출 등의 과정에서 남북이 총격전을 벌이는 아픈 역사도 있었습니다.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을 마주보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남북의 병력이 대치하던 JSA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으로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신범철. 남>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과 그 부속합의서죠? 거기에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서 군사분야부속합의서가 만들어졌는데요, 2조 2항을 보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이런 것을 위해서 구체적인 이행방안들을 합의했습니다. 그래서 10월 1일부터 지뢰제거 작업 등이 진행됐고 그것을 완료한 과정에서 검증을 한 것이구요 이러한 검증을 통해서 JSA 내에 있던 초소들을 철수를 하고 거기에 있던 지뢰를 제거하고 화기 및 탄약 이런 부분을 조정해서 실질적으로 JSA를 비무장화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북은 JSA 비무장화에 합의했고, 이 합의에 따라서 지난 달 25일, JSA내 모든 화기와 탄약, 초소 근무를 철수했습니다.

10월 26일과 27일에는 남·북·유엔군 사령부 3자협의체의 공동 검증이 진행되며 JSA는 설정 65년 만에 처음으로 비무장화가 완료됐습니다.


<신범철. 남> 구체적인 변화는 JSA 내에 있던 화기라든가 그런 것들이 이제 제거되구요, 그리고 기존에 있던 초소들도 철거를 해서 서로 양측에서 출입만 통제하는 부분을 관리 하는데요. 우리 측 초소는 북측에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측 초소는 남측에 있구요. 그래서 서로가 혹시 탈북을 하거나, 월북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초소 하나만을 두고 있구요. 사실은 그(JSA)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것이고, 아마 화면을 통해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우리 헌병이 이렇게 자세를 잡고 포즈를 취하듯 있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런데 이 비무장화가 완료되면서 남과 북의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그 지역을 볼 수가 있는 거죠. 이번에 정상회담을 했던 자유의 집이나 또는 뭐 통일각 이런 곳도 우리가 가서 볼 수가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된 거죠. 

 

비무장화가 이루어지면서 이제 JSA에는 총기를 휴대하지 않은 70명의 공동 경비 인원만 남게 됩니다. 

초소의 위치도 바뀌게 됩니다. 비무장화로 JSA 내 북측 초소 5곳과 우리 측 초소 4곳이 철수하고, 남북 초소의 교차 설치작업까지 완료되면 이르면 이 달부터 민간인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됩니다.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얘기를 나눴던 도보다리부터 북측 통일각을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으로 JSA 비무장화가 주는 의미는 큽니다.


<신범철. 남> 저는 한반도에서 실질적 신뢰구축 조치의 시범사례가 하나 완성됐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그간 여러 남북간의 대화가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JSA가 비무장화되고 이제 남과 북의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으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 했던 것을 새롭게 느끼고 그런 것을 통해서 서로 안정적으로 상대를 신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또 다른 차원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만들어나가는 그런, 어떻게 보면은 신뢰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있어서 첫 사업으로서 의미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실질적 내용도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면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현 정전체제를 제대로 준수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정전체제의 정상화. 그렇게 함으로써 군사적인 긴장을 해소하는 그런 노력이겠구요.

 

남북 긴장의 최일선이었던 JSA가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장소로 변모하면서 유사시 남북 충돌이나 확전 가능성은 낮아지게 됐습니다.

또한 군사합의가 실제 이행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JSA 비무장화로 DMZ 내 공동 유해 발굴, GP 시범 철수, 한강하구 공동 조사 추진 등 남북 군사당국 간 해결해야 할 현안이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신범철. 남> 마중물이 되어야 하고 또 될 거라고 기대를 합니다. 지금 남북 간에는 여러 가지 합의가 있어요. 뭐 비무장지대 비무장화만 해도 JSA 비무장화가 첫 출발이고 나중에 GP 철거같은 문제도 있구요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써 개발하는 문제도 있구요 그리고 그런 것을 바탕으로 해서 남북 간의 추가적인 운용적 군비 통제라든가 다음 단계로서의 신뢰구축 조치를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는 그러한 마중물로서의 의미가 크다, 이렇게 평가합니다.

 

지난 달 26일, 남북은 평양공동선언 이후 첫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남북은  비무장지대 전방 초소, GP 시범 철수 일정과 한강 하구 공동 이용을 위한 공동조사단 운영 방안 등을 합의했는데요. 작은 통일 실험으로 불리는 JSA 비무장화. 이를 시작으로 군사 합의 내용들이 잘 이행돼서 전쟁 없는 한반도로 성큼, 나아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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