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내용 중 일부 -
#인터뷰 : 문학평론가 전소영
박완서 작가는 소설들을 통해서 과거 전쟁과 또 관련된 아픈 기억들을 아주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슬픔이나 그 치유과정만을 담아내기 위해서 소설을 썼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로부터 분단에 이르는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인 사랑, 그 사랑을 파괴하는 폭력임을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양가에서는 혼사를 치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혼사치르기를 거부했다.
남들이 다 안 알아줘도 곱단이한테만은 그의 사랑법을 이해시키려고
잔설이 아직 남아있는 이른 봄의 으스름달밤을
새벽닭이 울 때까지 끌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 방앗간 같은 데서 밤을 지냈다고 해도
만득이의 손길이 곱단이의 젖가슴도 범하지 못하였으리라는 걸
곱단이의 부모도, 마을 사람들도 믿었다.
그런 시대였다. 순결한 시대였는지, 바보 같은 시대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우리가 존중한 법도라는 건 그런 거였다.
그렇게 만득이는 징용에 끌려갔고, 두 사람은 이별했습니다.
그 즈음 염병보다 더 흉흉하고 걷잡을 수 없는
나쁜 소문이 온 동네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대.
곱단이네는 그 고운 딸을 번갯불에 콩 궈 먹듯이
그 재취자리로 보내버렸다.
만득이와 곱단이의 연애를 어여삐 여기고 스스로 증인이 된 마을 어른들도
이제 곱단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일본군에게 내주지 않는 일뿐이었다.
마을은 아슬아슬하게 38 이남이 돼서
북쪽의 신의주와는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리고 곱단이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작가 : 박완서 (1931.10.20.~ 2011.1.22. 경기도 개풍군)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 한국전쟁으로 중퇴.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 으로 등단.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1981년 이상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