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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새벽 4시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이 회장은 2세 경영인으로서 국내 1위였으나 세계 시장에서는 무명에 가깝던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건희 회장 별세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 회장은 심폐소생술까지 받고 소생해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자가호흡이 돌아온 뒤부터 최근까지 산소호흡기 등 기계장치 없이 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는 못하고 6년5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장례식은 28일 엄수됐다.
삼성을 세계일류기업으로 키워내다
고인은 선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고인은 1942년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의 3남4녀 중 7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당초 이병철 회장은 장남인 고 이맹희 제일비료 회장을 후계자로 정해뒀으나, 그가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게 됐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을 모아놓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한 말은 혁신의 화두로 유명하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하며 오늘날 세계 일류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품질경영과 관련해서는 1995년 휴대전화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이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직원 수천 명을 모아놓고 문제의 제품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너무나 유명한 이 ‘사건’이 오늘날 세계 최고 품질이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이에 따라 1987년 1조원이던 시가총액을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시켰고, 외형은 총자산 500조 원이 됐다.
의미
이 회장 별세는 한국 재계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미 국내에서는 재벌 3, 4세 시대가 막을 올렸다. 한국 재벌은 고도성장기 국내 경제의 버팀목이 됐고, 수출 시장 개척을 통해 한국을 통상대국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부의 특혜, 정경유착, 불공정 거래 등 많은 심각한 부작용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재계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은 이제 이런 그늘을 떨쳐내고 투명하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거듭나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