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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윤이, 이초의 난

2014-08-02

고려 말 공양왕 즉위 후, 정국에 큰 파란이 일어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윤이, 이초의 난이다. 이 두 사람은 하급 무신들이라 역사에는 인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고려말 개혁 세력과 구세력간의 세력 다툼이 거세어진다. 박종기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와 함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명나라 황제에게 이성계 모함 설사건의 발단은 1391년 5월 공양왕 즉위 직후 고려의 사신 조반이 명나라에서 귀국하면서 얘기가 퍼졌다.
명나라에 갔던 고려의 하급무신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 황제 주원장에게 이성계가 명나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음모설을 전했다는 얘기다. 이런 말을 조반이 명나라 관리에게 들었다고 보고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진다.

공양왕은 사건을 무마하려해개혁 세력에 의해 왕위에 올랐지만 공양왕은 개혁세력과 구세력간의 세력 견제를 통해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윤이, 이초의 난 소식을 공양왕은 근거 없는 일이라고 묻어두려고 했다. 그러나 개혁 세력은 이를 계기로 이성계 세력에 반발하는 세력들을 제거하는 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공양왕은 개혁파의 의도에 따르지 않았다.

김종년 등 이성계 살해 음모설로 번져윤이, 이초 사건 연루자들을 심문하던 과정에서 김종년이 서경으로 도망가 이성계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설이 나돌면서 개혁파의 반대파 처형이 가속화되고 반대파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이성계의 개혁파가 고려를 개혁하고 조선을 건국하기 까지 치밀한 계획하에 추진된 일들로 평가되고 있다. 고려말에는 사회적 모순들이 많았고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런 것을 잘 파악한 개혁파가 결국 목적을 달성하고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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