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이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는 하지만, 국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무관심한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월등한 실력으로 국악과 대중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데 기여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 조상현이 바로 그 중 한 사람이다.
조상현은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보성에는 조선 말엽 강산제일이라 불리던 박유전 명창의 소리를 잇는 정응민 명창이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조상현은 12살 무렵 정응민 문하에 들어가 하루에 10시간씩 소리 공부를 하며 춘향가와 심청가, 수궁가를 사사했다고 한다. 또한,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공부하면서 고사나 한문을 인용한 많은 판소리 사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성인이 되어서는 박봉술 명창에게 적벽가를 공부하고, 서울로 상경해 국악계의 여장부였던 박녹주 명창의 양아들이 되어 흥보가를 배웠으며, 국립창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타고난 목이 좋은 데다 체켝이 커서 성량 또한 크고, 호남형의 얼굴에 탄탄한 실력을 갖춘 덕분에 공연에서는 언제나 주연을 도맡았고, 라디오 방송과 당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TV에서도 창극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서 대중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 탄신 84회 기념 전국명창대회 2위를 시작으로 1974년 제1회 전국명창대회 춘향제 1위, 1976년 제2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명창의 반열에 올랐으며 1982년부터 판소리보존연구회를 이끌어 왔다.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 받았지만, 2008년 불미스러운 일로 예능보유자에서 해제되었다. 그러나 갈고 닦아 온 실력이 문화재 보유자 지정 여부로 좌우되는 것은 아닌 만큼, 일흔을 훨씬 넘긴 지금도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명창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늘의 선곡
1. 판소리 춘향가중 적석가 - 조상현 소리
2. 판소리 심청가중 심봉사 통곡하는 대목 - 조상현 소리
3. 단가 사철가 - 조상현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