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법적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삼성물산 측이 합병 근거가 된 구체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반박에 나섰다.
앞서 삼성 측이 합병을 발표한 후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 주가가 낮은 시점을 고의로 선택해 합병 비율을 불리하게 결정했다고 주장하며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지난 5월26일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했다. 7월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 자로 합병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제일모직이 기준주가에 따라 산출된 합병비율인 1대 0.35로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식이다. 제일모직이 신주를 발행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교부할 예정이다.
합병회사의 사명은 ‘삼성물산’으로 결정했다. 이는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를 고려하고 삼성그룹의 창업정신을 승계한다는 의미다. 즉 1938년 삼성그룹 모태인 ‘삼성상회’로 설립된 삼성물산의 역사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3개의 기업이 모태가 돼 성장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삼성그룹 재편작업의 일환이다. 사업구조와 함께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특히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추진되는 것이란 설명이다.
논란
이 과정에서 복병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엘리엇이다. 엘리엇은 이사회의 합병 결정에서 삼성물산의 주가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지난 4일 전격적으로 7.12% 삼성물산 지분 보유 사실을 공시하는 한편, 국내 홍보 대행사를 동원해 보도자료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우군’ 만들기에 나섰다. 실제 일부 소액주주들은 엘리엇의 행보에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과 엘리엇의 공방
엘리엇은 9일 서울중앙지법에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7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을 결의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엘리엇은 합병안이 공정하지 않으므로 가처분 신청은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그간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던 삼성 측도 10일 반격을 시작했다. 대형 건설업계의 공통된 미래 불확실성이 합병 판단의 근거로 작용했다며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가 낮게 평가된 데 대한 구체적인 주가․자산 지표를 제시한 것이다.
법정으로 간 삼성 대 엘리엇의 다툼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엘리엇은 자산규모 290억 달러에 달하며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송사를 불사하는 공격적인 행태를 보인다.
다수 전문가들은 따라서 엘리엇의 의도가 분쟁을 일으켜 차익을 챙기고 빠지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6천억 ~ 7천억 원 정도를 몇 년간 묵혀둬도 문제가 없는 규모이므로 시세차익 10 ~ 20% 정도를 노린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총에서 합병이 결의돼도 주총결과무효 확인소송을 다시 제기하는 등 상법상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최악의 경우, 투자자-국가소송(ISD) 카드도 빼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