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문화

홈 스위트 홈 - 최진영

2023-10-17

ⓒ Getty Images Bank
죽음이란 검은 구멍이 한발 앞에 있는 것 같았다.
고통에 짓눌릴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피하려고 하는 것이 고통인지 죽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거듭되는 치료와 재발을 겪으며 강함을 다 써버렸다.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내가 낮은 확률에 속하리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믿음이 필요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그들이 찾는 것을 기적처럼 꺼내어 건네주는 상상은 천국 같았다.

또한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두고 갈 것.


# 인터뷰. 전소영
주인공은 암이 재발해서 언제든지 이렇게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던 그런 인물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러는 대신에 자신의 오늘을 엄마에게, 또 연인에게 미래의 선물로 보내주기 위해 현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더 가치 있게 현재를 살아갈 결심을 합니다. 참 어려운 결심인데, 이것은 주인공이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남겨질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한 것이죠. 그리하여 이 집은 천국과 같은 홈 스위트홈입니다 떠나는 주인공이 남은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곳, 또 남겨진 사람들이 주인공으로부터. 건네받을 선물이기도 하니까요.


공사는 무사히 끝났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니까,
미래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 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없겠지만.



작가 최진영 (서울, 1981년~)
    - 등단 : 2006년 단편소설 [팽이]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