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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984년, 북한의 수해지원물품 분단선 넘다

2018-03-22

한반도 리포트

1984년, 북한의 수해지원물품 분단선 넘다
분단 이후 남북 간의 교류 노력은 계속돼 왔다. 특히 자연재해를 당했을 때 남북 간 지원 제의가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한국과 북한에서 자연재해 중 홍수로 인한 재해가 자주 발생했다.
남북 간 수해지원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였다.
1984년 수해를 입은 한국을 돕기 위한 북한의 구호물품 지원 당시의 상황을 조명한다.

북한, 수해 입은 한국에 지원 제의
1984년 8월31일부터 4일간 내린 집중 호우로 서울 일부 지역이 물에 잠기고 전국적으로 189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던 최악의 홍수가 있었다.
북한은 9월 8일 방송을 통해 구호품 지원을 제의했다. 북한은 이전에도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폭우나 태풍으로 한국이 큰 피해를 입으면 돕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의 제의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했다. 그러나 1984년 수해 시 북한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 회담이 열렸다.

최초로 이뤄진 남북 물자 교류
1984년 9월 14일부터 19일까지 판문점 중립국 감시감독 위원회 사무실에서 남북적십자 실무회담이 열렸다.
양측 간의 합의로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시멘트는 서해안의 인천항, 동해의 북평항으로 쌀과 옷과 의약품은 판문점을 통해 전달 받았다.
이것이 분단 이후 최초로 이뤄진 남북 간 물자교류라는 의미가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 계기
북한의 구호물품 지원으로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회담이 열렸고 그 결과 이듬해인 1985년에 1970년대 이후 중단됐던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열려 9월에는 남북이산가족상봉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졌다.
한국도 1995년 6월 25일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북한을 돕기 위해 처음으로 대북 쌀 지원을 했다. 2000년대에도 한국은 북한에 큰 수해가 발생하면 긴급 구호물품을 보냈다.

2010년 10월 이후 수해지원 중단
한국이 북한에 수해지원을 한 것은 2010년 10월이 마지막이다.
이후로도 한국은 북한이 수해를 당했을 때 지원을 제의했지만 북한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84년 북한의 구호물품 지원을 한국이 받아들이면서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된 것을 떠올리며 앞으로도 남북 간 인도적인 차원의 교류와 협력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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