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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01년 남북 이산가족 서신 교환

2018-08-16

한반도 리포트

ⓒ KBS News

오는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난다.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15년 이후 3년 여 만에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전, 이산가족은 편지로 감격적인 만남을 가진적이 있다. 오늘은 ‘2001년 남북 이산가족 서신 교환’을 따라가본다. 


2000년 8월 15일, 15년만에 이산가족 상봉 이뤄져

2000년 6월 15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발표된 6·15 남북공동선언에는 

이산가족들이 반가워할 합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2000년 8월 15일,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 이후 15년 만에 이산가족상봉이 다시 이루어졌다. 그리고 9월에는 이산가족의 숙원인 생사와 주소 확인 작업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생사확인이 된 사람은 서신교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 간의 편지 교환은 반세기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945년 광복 후, 남북간 우편물 교환은 금지

1945년 광복 후, 남북간 우편물 교환은 정치적 이유로 금지됐다. 이후 미ㆍ소 공동위원회에서 합의를 하면서 1946년 3월 13일, 다시 우편물이 남북을 오가게 됐지만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6월 22일을 마지막으로 이후로는 교환이 중단됐다. 1월 29일 열린 적십자회담에서 남북은 이산가족 300명에 대한 서신 교환을 3월 15일에 실시하기로 했다. 


2001년 3월 15일, 첫 남북 간 편지교환 이뤄져

남북 간의 첫 공식적인 서신교환을 위해서 생사확인 작업이 시작되자 대한적십자사에는 생사확인 의뢰가 쏟아졌고, 두 차례의 생사확인 끝에 남북 각 300명의 이산가족이 서신교환을 하기로 했다. 이산가족들의 서신 내용은 정치적인 내용은 빼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만 적어야 했다. 

실타래 같은 사연을 풀어놓은 편지는 대한적십자사로 속속, 도착했고 2001년 3월 15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이 각각, 300통씩의 편지를 교환했다. 


생사 확인·상봉 정례화·서신 교환 필요

그렇지만 3월 15일 교환된 서신에 답장 한 번 받지 못 한 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편지 교환은 재개되지 못했다. 이산가족 교류는 2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15차례 더 이루어졌지만, 그 방식은 언제나 대면 상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월, 우정사업본부는 “하루 한 번, 판문점에서 만나서 편지를 교환하자”는 서신교환을 위한 기본협정안을 마련했다. 통일부도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 주 금강산에서 이루어지는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오랜만에 이루어지는 이산가족의 만남이 서신교환을 비롯한 이산가족 상봉 방식의 다양화, 상봉의 정례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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