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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15부-청년 전태일 노동운동의 불씨가 되다

2015-04-14

제 15부-청년 전태일 노동운동의 불씨가 되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앞 사거리에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불씨가 된 사건이 발생한다.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과 12명의 동료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나 시위를 주도하던 전태일이 분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전태일 사건의 전모를 조명한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항거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전태일은 병원에 실려가지만 이미 화상이 심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간 어머니 ‘이소선’씨에게 전태일은 마지막 힘을 다해 당부한다. “자신이 못 이룬 일을 어머니가 꼭 이뤄달라!”고.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그날 밤 10시 경 전태일은 짧은 생을 마감한다. 한국 노동운동의 불씨를 남기고...

하루 평균 16시간의 중노동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씨와 함께 일하던 동료 임현재 씨는 당시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최악의 환경’이었다고 회고한다.
천장이 낮아서 늘 앉아서 일해야 하는 상황, 아침 7시에 시작하면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중노동, 환기가 안 돼 유독한 공기를 늘 마시고 지내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 속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는 기본적인 생계도 유지하지 못할만큼의 열악한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 최악의 환경에서 일해
1960년대 후반, 당시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은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최악의 노동환경 속에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평화시장에는 2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8~90%는 10대 초반의 여공들이었다.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이 몸이 아프면 돈을 털어 약을 사주거나 대신 일을 해줬다. 근로자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늘 앞장 서 왔다.

1969년 6월 말, 바보회 결성
1969년 6월 말, 덕수궁 근처 중국집에서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1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노동자들의 친목단체인 ‘바보회’를 결성한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등에 대해 설명하며 열악한 근로 환경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노동자들이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바보회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이끌던 전태일은 청계천 일대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조사해 노동청에 보내 시정을 요구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자신도 불살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계속된 청원에도 달라지지 않는 업주와 노동청의 태도에 분개한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동료들과 함께 ‘근로기준법’화형식과 함께 격렬한 시위를 주도한다. 또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불씨가 된다.
이 사건 이후 한국 사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 때문에 가려졌던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 환경에 대한 자각이 전 사회에 퍼져나가 노동환경 개선에 획기적인 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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