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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16부-유신시대, 청년문화의 바람이 불다

2015-04-21

제 16부-유신시대, 청년문화의 바람이 불다
1972년 10월 17일 오후 7시.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민족의 살길을 찾아 일대 개혁을 실시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담화와 함께 선포된 ‘10월 유신’으로 정권이 언론 통제 등 전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철권통치’의 막이 올랐다.
이에 저항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청년문화가 싹 튼 것도 이 시기였다.

정권 연장 위한 ‘유신 개헌’
1961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4월 27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세번 째 집권에 성공한다. 집권 1년 6개월이 지난 1972년 10월 17일 정부는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헌법 개정’을 골자로 하는 유신헌법을 공표한다.
유신헌법으로 대통령 선거를 직접에서 간접으로 바꾼 뒤 그 해 12월 13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박정희 후보가 단독으로 출마해 또 다시 당선, 제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유신체제가 출범한다. 유신헌법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대통령의 임기는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고 권한도 막강해져 국해해산권과 긴급조치권도 갖게된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독재’를 강화하고 영구집권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자유를 추구하는 청년들과 억압하는 정부
유신헌법이 통과돼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철권통치가 시작될 무렵, 청년들 사이에는 자유를 추구하는 서구의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미국의 팝송이 라디오를 통해 길거리에 울려퍼지고 청바지, 미니스커트, 장발이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를 억압하고 획일적으로 국민을 통제하에 두려는 정부는 길거리에서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을 대대적으로 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대중가요도 수난 시대
유신체제하에서 통기타 음악, 통기타 가수들도 청년들의 아이콘으로 ,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가요의 가사 하나하나도 정부의 검열 대상이었다. 예를 들면 이장희의 ‘그건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돌연 정부가 금지곡으로 선정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풍토를 조성한다는 이유였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라는 노래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를 당했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많았던 시절이자 자유를 갈망하는 청년들과 이를 억압하려는 정권과의 갈등이 심각했던 고통의 시기이기도 했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자유와 새로움에 대한 열망을 꽃 피웠던 당시의 청년 문화가 오늘날의 다양하고 참신한 청년 문화의 뿌리가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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