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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21부-시대를 이끈 ‘범국민 운동’

2015-05-26

제 21부-시대를 이끈 ‘범국민 운동’
권위주의 시대로 기억되는 1970년대의 한국은 ‘범국민 운동’의 시대였다.
쥐잡기 운동에서 혼 분식 장려 운동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캠페인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정부에서 주도해 전 국민이 이에 동참하도록 다양한 캠페인과 국민 계도 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온 국민이 혼연일체로 참여하게 유도했다.
범 국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그 시절을 조명한다.

식량난 완화를 위한 ‘쥐잡기 운동’
지금의 중장년층 이상은 ‘쥐 잡는 날’을 기억하고 또 학교 단위, 동네 단위로 대대적인 쥐 소탕 캠페인을 벌이던 시절을 떠올린다.
정부가 쥐잡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친 배경은 쥐가 가뜩이나 부족한 곡식을 축내는 주범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1971년 3월부터 대대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펼쳐졌다. 당시 캠페인을 주관한 농림부가 추산한 전국의 쥐 숫자는 약 8천만 마리! 이는 인구 1인당 3마리, 한 가구당 17마리가 된다.
쥐가 먹는 식량은 한 해 약 190만 섬, 200억 원 어치로 당시 곡물 총생산량의 8%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80년대 초까지 지속
1971년 3월 25일에 시행된 대대적인 쥐 소탕 작전으로 4천 6백 67만 마리의 쥐가 소탕됐다. 목표량의 50% 이상을 달성한 것이다. 정부의 쥐를 소탕하기 위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후 매년 2회 씩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이 펼쳐졌다. 쥐 잡기 운동은 80대 초까지 지속되다 폐지된다.

쌀 수입 줄이기 위한 ‘혼 분식 장려운동’
1960년대 말부터 정부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것이 ‘혼 분식 장려운동’이다. 쌀 생산량이 부족해 많은 량의 쌀을 해외에서 수입했는데 쌀 수입을 줄이기 위한 일환으로 ‘혼 분식 장려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정하고 이날 모든 음식점들은 밥에 보리쌀이나 밀가루를 25% 이상 혼합하도록 하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아예 쌀로 만든 음식 판매를 금지하는 강력한 법을 시행했다.
또 언론을 통해 밀가루와 잡곡이 쌀 보다 영양가가 훨씬 높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당국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쌀 소비가 점차 감소하고 쌀을 자급자족하게 되자 1977년 ‘분식의 날’이 해제되고 혼분식 장려 운동도 폐지된다.

국가 주도의 범국민 운동, 많은 변화 이끌어
1970년대를 상징하는 ‘범국민 운동’은 시대적 상황적인 필요에 따라 생겨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막 가난을 벗어난 무렵, 아직도 잘 사는 나라로 가는 길에 다양한 어려움이 있던 시절, 정부가 반 강제적으로 나라 전체에 필요한 일들을 주도한 것이다.
국민들도 국가 정책에 호응해 ‘모두가 더 잘 사는 나라’를 위해 적극 범국민 운동에 참여했고 많은 결실과 변화를 만들어냈던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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