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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을사사화의 배경과 의미

2012-03-24

무오,갑자,기묘사화에 이어 조선시대 4대 사화로 불리는 을사사화의 배경과 전개 과정, 을사사화 전후로 한 사회 배경 등을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중종 이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
중종 사망 후 어린 인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한 지 1년이 못돼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인종 즉위를 도운 세력들은 사림파를 대거 등용했으나 인종 이후 명종을 즉위시킨 외척 세력들을 사림파를 경계하고 마침내 제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명종 즉위 원년 1545년에 일어난 을사사화다.

명종의 어머니 문정 왕후의 득세
명종이 즉위할 때 12세였는데 어린 문종의 뒤에서 수렴청정하는 문종의 어머니 문정왕후는 본인의 역할 이상으로 뒤에서 문종을 조종하며 본인의 의도대로 왕정을 이끌려고 하였다. 문정왕후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실권을 휘둘러 조선시대의 여걸로 기록되고 있다.

문정 왕후에 대한 반발
당시의 조선 사회는 문정 왕후의 처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열녀실기전에는 문정 왕후가 명종이 자신의 뜻대로 왕정을 행하지 않을 경우 때리기도 하는 등 포악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역사는 사관의 주관에 따라 기록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짐작된다.

인종의 실세에 대한 반발
인종이 즉위할 때 외삼촌인 윤인이 실세로 많은 역할을 하였고 그는 사림파를 이어가고자 하는 뜻으로 손인수, 이언적 등 사림파들을 대거 등용하는데 1년이 못되어 인종이 사망하고 명종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문정 왕후를 중심으로 한 외척들이 세력을 형성하면서 기존 세력인 사림파들을 대거 처형하는 것이 을사사화다.

을사사화 이후 불안정한 사회
을사사화 이후에도 국정은 안정되지 못하고 수년간 혼란이 지속되는데 경기도 관찰사 김평윤의 고변 사건으로 성종의 손자 계림군, 봉선군 등이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을 둘러싼 반대파들의 처형에 이어 1547년에는 문정 왕후를 비방하는 벽서가 양재역에 걸려 배후자들을 대대적으로 처형하는 정미사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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