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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의 실리 외교

2014-05-24

고려시대의 주변 상황을 보면 초기의 다강 구조에서 점차 중국은 한나라 , 만주 지역에서는 거란, 여진 등 호족들이 세력을 다투는 3강 구조가 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이었다. 따라서 고려는 상황에 따라 주변 국가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실리 외교를 추구하는 것이 외교 정책의 특징이었다. 고려 시대의 주변 상황과 고려의 다원적 외교 정책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 종기 교수와 함께 살펴본다.

10세기~ 14세기, 동아시아 다원적 외교질서
고려 시대 즉 10세기에서 14세기 무렵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정세는 조선과 명나라, 조선과 청나라의 예처럼 1대1의 외교 관계가 아닌 다원적 외교관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려 초기에 중국은 15개 왕조가 서로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이후 송나라, 한나라 등으로 세력의 변화가 있었고 만주 지역은 거란,금, 발해 등이 세력 차지를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이런 다원화 시대에 고려는 실리를 가장 우선에 두고 다원적 외교 정책을 펼쳤다.

중국의 송나라 고려와 연합해 거란에 대항
당시 중국의 송나라는 문화적으로는 상당한 발전을 이뤘지만 군사적으로는 만주의 거란족에 비해 열세였다.
이런 이유로 송나라는 고려와 군사적 연합으로 거란에 대항하는 정책을 펼쳤다. 고려에 대해서는 유화 정책을 펼치며 선진 문물을 전파했다. 거란 등 만주지역의 호족 세력들은 송나라와 고려가 연합하는 것을 부단히 견제했다. 고려에 대해서는 강공책을 쓰는가하면 고려로부터 생필품 등을 공급받기 위해 영토 제공 등 유화책을 동시에 썼다.

거란과의 전쟁 후 송나라와 외교 재개에 신하들 반대
문종 12년인 1058년의 기록을 보면 문종은 거란과의 전쟁을 끝낸 후 50여년 간 단절됐던 송나라와의 외교을 재개하려한다.
이에 대해 신하들은 당시의 상황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절실한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송나라와의 외교 재개를 반대한다. 문종은 송나라와의 외교 재개로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당시에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문벌 귀족들은 주도권이 왕에게 넘어가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의 등거리 실리외교, 현대 사회에도 교훈
한국의 역사상 외교 관계에 있어서 가장 실리를 추구한 왕조는 바로 고려다. 침략과 저항, 사대와 자주라는 단순 논리로 고려의 외교를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 가장 적합한 외교 정책을 채택한 것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고려의 실리 외교는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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