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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7·4 남북공동선언

2018-03-08

한반도 리포트

7·4 남북공동선언
남북이 분단된 지 올해로 74년이 지났다.
아직 통일의 꿈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간 통일을 향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돼 왔다.
봄 개편을 맞아 통일을 향한 남북 대화와 협력의 발자취를 조명한다.
오늘은 첫 번 째 순서로 ‘7.4 남북 공동성명’을 돌아본다.

통일의 희망 심어준 ‘7.4 남북 공동선언’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남북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한 선언으로 한반도는 통일 실현에 대한 희망으로 요동쳤다.
금방이라도 분단의 비극이 종식될 기대감이 넘쳤고 특히 실향민들은 고향 방문의 꿈에 들떴다. ‘7.4 남북 공동선언’에 대한 지지도 이어졌다.

분단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남북 갈등과 긴장
1945년 8월 15일!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한반도는 광복의 기쁨으로 가득했지만 일본이 물러나면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과 소련은 38선으로 남과 북을 나눴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간 이념 대결로 1948년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됐다.
1950년에는 구소련군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해 3년 간 계속됐다. 휴전 후에도 남북 간의 대치와 긴장은 계속됐다.
1968년 1월에는 북한의 특수 부대가 남침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해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국제정세 변화가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
휴전 후 계속되던 남북 간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극적으로 획기적인 남북 화해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내용으로 하는 ‘7.4 남북 공동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당시 국제정세가 냉전에서 평화, 화해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1969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에 맡긴다!’는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냉전 체재가 완화되고 평화와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 선언된 미국의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교류 증진 노력도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의 계기가 됐다.

남북 간 견해 차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노력 끝에 결실
남북이 견해 차이를 줄이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7.4 남북공동성명’ 실무 총책을 맡았던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은 그 당시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줄다리기였다!‘고 회고한다.
1971년 남북 이산가족 찾기 회담을 제의한 적십자 회담으로 남북 대화가 시작됐지만 실질적인 진전이 없자 이 회담은 정치적인 성격으로 변질됐다.
이후 남북의 특사가 비밀리에 평양과 서울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 박정희 대통령과 각각 회담을 가진 끝에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평화 공존으로 가는 길 마련
‘7.4 남북공동성명’에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을 위한 3대 원칙이 담겨있다.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상호 비방 중단, 군사 충돌 방지, 남북 교류 실시,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서울과 평양에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에 합의하는 내용이 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상호 실체를 인정한 남북이 평화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실천 방법에 대한 극명한 견해 차이로 대화 중단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부풀었던 통일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동성명’에서 발표한 남북 화해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에 대해 남북 간에 극심한 견해 차이를 보였다.
남북의 상황도 불리하게 돌아갔다. 1972년 10월 한국에서는 유신헌법이 제정되고 12월에는 북한에서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되면서 남북 모두 독재 체제가 강화됐다.
이후 유엔 가입을 둘러싼 입장 차이를 빌미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남북 대화가 중단됐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 교류에 변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진지한 대화를 통해 이뤄낸 평화 통일을 위한 ‘7.4 남북공동성명’이 실질적인 결실을 이루지 못해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 교류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남북 간 만남이 적십자회담에 한정됐지만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교류가 진행됐다.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남북 관계의 대 원칙을 공동으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통일을 향한 남북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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