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이슈

[스포츠] 제100회 전국체전, 4일 서울서 성대한 개막…역대 최대 개회식

2019-10-04

뉴스

ⓒYONHAP News

전국체육대회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처음 열렸다.

당시 조선체육회로 불렸던 대한체육회가 창립과 함께 시작됐다.

1919년 비폭력 독립운동인 3.1운동을 진압한 일제는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했다.

이전의 헌병경찰통치의 압제가 3.1운동을 불러왔다고 판단하고 정책을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체육계에서 일어난 변화가 바로 이 체육대회였다.


제1회 대회는 종합체전이 아닌 야구대회였다. 

지금의 서울특별시인 경기도 경성부에서 '전조선 야구대회'란 명칭으로 열린 것이다.

야구대회에서 탈피해 여러 종목의 경기를 펼치는 종합경기대회로 바뀐 것은 1925년이다.

또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맞은 1934년 15회 대회에는 다양한 구기종목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대회 명칭도 '전조선종합경기대회'로 바뀌었다.


부침도 많이 겪었다.

18회 대회를 끝으로 1944년 25회대회까지는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1938년 총독부가 조선체육회를 강제 해산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동아일보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조선체육회도 부활하고 전국체전도 26회 대회로 함께 재개됐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발발로 30회 대회가 또 열리지 못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1951년부터는 다시 대회가 개최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남북이 분단되는 바람에 북한 지역은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출신의 실향민들은 '이북5도 선수단'이란 명칭으로 대회에 참가한다.

또 재외동포 선수단도 대회에 참가한다.


전국체전은 1948년 28회대회부터 대한민국 정부 공인대회가 됐다.

대회는 종목별로 남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나뉘고 시•도 단위 대항전으로 치러진다.

시도별 종합 순위는 메달 획득 순위가 아니라 종합득점제로 정한다.

득점은 매달 획득 점수와 종목별 부문별 배점, 가산점 등을 합산해 산정한다.


그동안 한국은 식민지에서 세계 4대 빈국, 고성장 중진국을 거쳐 OECD 회원국으로 올라섰다.

체육계도 스포츠 불모지에서 세계 무대의 변방을 맴돌다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일부 종목은 세계대회 우승보다 국내대회 우승이 더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축구대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빅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런 만큼 100회 전국체전은 그 의미가 크다.

역사적 의미 외에도 도쿄올림픽이 1년도 남지 않은 시기여서 경기 자체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이에 따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대거 출전, 가히 미리 보는 도쿄 올림픽이라 할 만하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