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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가입 30년

#주간핫이슈 l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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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News

한국이 남북 동시 가입으로 유엔 회원국이 된지 17일로 3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국제사회의 중견국가로 영향력도 커졌고, 이제는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선도국가로서 세계의 이목을 끄는 나라로 성장했다.


한국의 유엔 가입

유엔 가입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은 1945년 해방 후 분단과 미군정기를 거쳐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고, 이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승인 받았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 1월 유엔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유엔이 승인한 유일한 합법정부이므로 유엔 가입에 어떤 문제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냉전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 단독 가입에서 남북한 동시가입까지 추구했으나 동시가입이 분단을 고착시킨다는 북한의 논리를 지지한 중국과 소련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이같은 상황을 바꾼 것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과 그에 이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였다. 1990년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같은 해 중국과 무역대표부 설치에 합의하는 등 정세가 급변했고, 이를 계기로 남북한 동시가입이 지지를 얻어 1991년 마침내 유엔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30년

한국은 일제 식민지 수탈과 1950년부터 53년까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사실상 폐허가 됐고, 이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로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 연명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60년대 경제개발에 나선 후 70년대부터 고도성장을 구가했고, 유엔 가입 당시인 1991년에는 이미 중진국으로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유엔 가입 후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다른 회원국보다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유엔애 대한 재정적, 인적 기여도 크게 확대한 것이다.

유엔 내 구속력을 갖는 유일한 결정 기관인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에 12차례나 진출했고, 2001년에는 처음으로 한승수 당시 외무장관이 유엔총회 의장직을 수임했다. 2006년부터 2기 연임한 반기문 제8대 사무총장 등 여러 유엔 기구의 수장도 배출했다. 

유엔 가입 초반인 1992년엔 한 명도 없던 유엔 사무국 내 한국인 직원 수도 지난해 기준 171명에 달한다. 유엔 정규예산 분담률도 초반 0.69%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27%로 193개 회원국 중 11위를 차지하는 기여국이 됐다. PKO 분담금 순위는 10위이며 레바논 동명부대를 포함, 세계 5개 임무단에 569명을 파견하고 있는 등 평화유지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이미 국제사회의 중견국(middle power)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일원으로 세계 선도국가 중의 하나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와 과제

유엔 가입은 남북한 관계에서도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됐지만, 아직 대치 상황에 개선이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또 한국의 위상이나 분담금 비율로 볼 때 세계적 현안에 대해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더 능동적으로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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