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급할 때는 염치가 없는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와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립니다.’를 모두 들을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일까요?
네, 이때는 ‘염치 불구하고’가 아니라 ‘염치 불고하고’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구하고’와 ‘불고하고’는 모양이 비슷해서 뜻까지 혼동해서 쓸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불구(不拘)하고’는 ‘아니 불(不)’자에 ‘잡을 구(拘)’자를 써서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폭우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고 하면 ‘폭우가 내리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는 뜻이지요.
반면에 ‘불고(不顧)하고’는 ‘아니 불(不)’자에 ‘돌아볼 고(顧)’자를 써서 ‘돌아보지 아니하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부탁한다고 하면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 외에도 ‘체면을 불고하고’나 ‘죽음을 불고하고’와 같은 표현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체면을 불고하고 나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