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경과

북한군 기습 남침과 낙동강선으로 후퇴 (1950. 06. 25 ~ 09. 14)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 (06. 28) 한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이 참전 (07. 1)하였지만 개전 한 달여 만에 낙동강선까지 후퇴하였다. (06. 25~07. 31) 이후 40여 일 (08.01~09. 14)동안 낙동강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하여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인천상륙작전과 압록강으로의 진격 (1950. 09. 15 ~ 10. 24)

인천상륙작전 (09. 15) 성공과 낙동강 전선에서의 반격으로 전세를 역전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탈환(09. 28) 후 반격개시 보름 만에 38도선을 회복하였다. (09.16~09.30)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한 아군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압록강 인근의 초산까지 진격하여(10.1~10.26) 통일을 눈앞에 두는 듯 하였다.

중공군의 개입. 새로운 전쟁 (1950.10.25 ~ 1951.07.09)

국군이 압록강(초산)까지 진격하고 있을 무렵 (10.26) 이미 25만 여명의 중공군은 압록강을 건너와 국군과 유엔군의 등 뒤에서 기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0월 25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는 이듬해 5월까지 5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12월초 중공군의 2차 공세로 인해 평양철수(12.04)를 개시한지 한 달 만에 다시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01.04 후퇴) 평택과 삼척을 연하는 37도선까지 후퇴하였다가 서울 재탈환(03.15) 이후부터는 38도선을 중심으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하였다.

휴전협상과 휴전선 일대의 고지쟁탈전 (1951.07.10 ~ 1953.07.27)

유엔군과 공산군은 1951년 07월 10일 휴전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2년 간이나 계속된 휴전협상 기간 동안 남북한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현재의 휴전선 일대에서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계속하였다. 전쟁개시 3년여 만인 1953년 0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조인되면서 남북한은 휴전선으로 분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료출처 : 육군군사연구소, 정리:국방일보, 편집:전옥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