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가슴의 꽃으로 피어라

광주 민주화 운동
휴교령이 내려진 5월 18일 아침, 전남대 교문 앞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의 충돌이 최초로 일어났다. 계엄군은 학생들이 광주 시내로 진출해 가도시위를 벌이자 시위대와 시민들을 향해 대검과 진압봉을 휘둘렀다. 이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은 19일 아침부터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인파는 점점 늘어나 20일 오후가 되자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대 규모가 커지자 계엄군은 21일 시민들을 향해 일제사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시위대는 경찰서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로 무장하고 계엄군이 철수하면서 시위대는 도청을 접수하였다.

시민들은 스스로 질서유지와 치안을 담당하며 시민대표들로 수습위원회를 꾸리고 계엄분소를 찾아가 협상을 벌이는 한편 시민군의 무기를 회수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기 휘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은 27일 새벽 광주 시내에 재진입하여 도청을 포위하고 남아서 항쟁하던 시민군을 전격 진압하였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 사태로 사망 154명, 행방불명70명, 부상 1,628명 등 총 4,362명의 피해가 났다(출처 : 5∙18 기념재단). 1995년 국회에서는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사태에 책임이 있는 신군부 핵심인물들을 기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1997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17년을 선고 받았으나 같은 해 12월에 특별 사면되었다.

<출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1980년 5월 18일자 중앙일보 호외
1980년 5월 18일자 중앙일보 호외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출처: 연합뉴스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출처: KBS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출처: KBS
광주민주화운동 군인
광주민주화운동 군인
출처: KBS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광주민주화운동 시위대
출처: KBS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출처: KBS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출처: KBS
민주화운동 당시 경찰관의 일지
민주화운동 당시 경찰관의 일지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출처: KBS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