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역에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작업은 1945년
2차대전 종전과 소련군의 진주 직후부터 진행됐다.
1945년에는 이미 각 지방 '인민위원회'가 조직됐고, 이어 소련군 사령부 주재 아래
북조선 5도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소집돼 북조선5도 행정국이 발족했다.(10.8)
1946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설, 도 · 시 · 군 인민위원 총선거 실시 등이
있었고, 1947년에는 도 · 시 · 군 인민위원회 대회가 개최돼 대의원 237명을
뽑아 북조선인민회의(국회 격)를 구성했으며, 제1차회의(2.21 ~22)가 열려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인민위원회'(과도정부 격/22명의 위원)를 결성했다.
|
1948년
9월 8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수상으로 선출된 김일성. 왼쪽부터
김책(부수상), 박헌영 (남노당 총수), 김일성 |
|
유엔 총회가 남북한 총선거를 결정하고 이를 위해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구성되자 북한에서는
'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한 준비가 빨라져 북조선인민회의 3차회의(11.18 ~ 19)에서
‘조선림시헌법제정위원회'가 조직돼 같은 해 12월 20일 헌법 초안이 마련됐다. 이
초안은 1948년 4월 28일 소집된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의 심의 결과 '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으로 정식 확정됐다.
8월 25일에는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돼 총 212명의 대의원이 선출됐다.(등록
유권자 99.97% 투표, 98.49% 찬성율 발표) 또한 이른바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360명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하여 보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9월 2∼10일 평양에서는 '대의원' 572명이 참가한 가운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가 개최됐고, 여기서 헌법을 정식 채택하고 9월 9일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를 출범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