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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속도전

2019-09-19

© KBS

최근 북한 TV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하루에 만 리를 달린다는 ‘만리마(萬里馬)’다. ‘만리마’의 정식 명칭은 ‘만리마 속도창조운동’. 북한의 대표적인 속도전인 ‘천리마 운동’을 김정은 위원장 방식으로 변형한 대중 동원 운동인데, 북한이 속도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교육원 정은찬 교수와 알아본다. 


북한 특유의 속도전인 ‘천리마 운동’ 

하루 천 리를 달린다는 전설의 말에서 유래한 ‘천리마(千里馬) 운동’은 1956년 제안됐다. 소련의 원조 삭감으로 조성된 자본, 물자, 기술 부족 사태를 주민의 자발적인 역량으로 돌파하고, 전후 복구를 위해서 도입된 ‘천리마 운동’은 노동력을 총동원해서 최단 기간, 최고의 성과를 내는 북한 특유의 속도전이다. ‘천리마 운동’으로 목표한 성과를 이루고, 주민 결속을 성공적으로 도모한 북한은 이후 ‘70일 전투’, ‘100일 전투’. 지속적으로 속도전을 강조했다. 

지금도 속도전은 유효하다. 2016년 제7차 당 대회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만리마 시대가 열렸다’고 선포하면서 ‘만리마’는 북한의 새로운 속도전 구호로 자리 잡았다.


‘천리마 운동’보다 열 배 더 속도를 내는 ‘만리마 운동’

2012년 집권을 시작한 김정은 위원장은 2013년 ‘선 핵개발, 후 경제개발’ 병진노선을 강조했고, 2016년에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핵·경제 건설 병진’에서 ‘경제건설 총력 집중’으로 노선 전환을 선언하며 경제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만리마 운동’은 경제성과를 내기 위한 것으로 김일성 시대의 증산운동인 ‘천리마 운동’보다 열 배 더, 속도를 내라는 것이다.

'만리마' 시대 선포 이후 고강도의 속도전은 북한 전역, 모든 분야를 휩쓸고 있다. 제철소에서도, 시멘트 생산 공장에서도 ‘만리마’ 속도 구호가 넘쳐났다.

타조 농장의 자동 먹이 기계, 전자화폐 카드, 상점의 전자계산대. 농업, 제조업, 일상생활에까지 접목되고 있는 현대화 설비도 ‘만리마 속도전’의 산물이다. 북한이 ‘만리마’ 시대의 상징물로 내세우는 것은 ‘여명거리’다.


‘만리마’ 시대의 상징인 여명 거리 

1년 만에 지어진 ‘여명거리’는 부지 면적만 90만㎡(약 27만3000평)이다. 70층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포함해서 신축 아파트 수십 동, 학교와 유치원 등 공공건물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LH토지주택연구원’에 따르면 ‘여명거리’ 공사에 동원된 연 근로자 수는 800만 명. 하루 3만여 명이 휴일 없이 24시간 2교대로 공사를 진행한 결과였다.

북한 당국은 착공 1년 만에 완성된 ‘여명거리’를 두고 ‘기적의 창조’를 이뤄냈다는 자평했다. 하지만 세차게 몰아붙이는 ‘만리마’ 속도전으로 북한 주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강제 동원으로 이루어지는 속도전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다. 북한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진학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으면 대개 군에 입대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탈락한 젊은이들은 ‘속도전 청년 돌격대’에 차출된다. 

돌격대원들은 젊고,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온갖 궂은 공사에 동원돼서 힘든 노동을 하는데, ‘속도전 청년 돌격대’는 평상시에는 7만 명에서 10만 명, 대형공사가 있을 경우는 20만 명에서 30만 명에 이른다.

이외에도 부족한 자재와 열악한 장비를 노동력으로 채우기 위해서 수많은 주민들이 동원되고, 필요한 물품까지 강요되면서 주민들의 경제 사정은 어려워지고 있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속도전은 무리한 공사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각종 사고로 이어지는 ‘만리마 운동’

천리마의 10배가 넘는 속도로 경제건설에 나서자는 ‘만리마 운동’은 각종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북한 황해남도 송화군 등 농촌지역에 새로 건설된 주택이 무너져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에 맞서서 주민들에게 속도전을 강조하는 북한.

내부 결속과 자력갱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지만 주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북한의 속도전은 속도를 내면 낼수록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