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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세계유산 등재

2025-07-23

ⓒ KBS News
북한의 금강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2004년 ‘고구려 고분군’, 2013년 ‘개성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 목록에 올린 북한은 이로써 3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금강산은 ‘천하제일 명산’으로 꼽혀온 만큼 북한 관광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금강산 세계유산 등재와 영향을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센터장과 진단한다.

‘민족의 명산’ 금강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북한의 금강산이 울산 반구천 암각화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7월 13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북한 측이 신청한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확정했다.
금강산은 강원도 북부 회양군,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 드넓게 펼쳐진 명산으로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 등으로 나뉘어 사시사철 풍경이 달라지고, 곳곳에 고찰과 암자, 석탑 등이 조성돼 불교 유산의 명소로서도 유명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유네스코 유산 관련 협약 및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북한은 2021년 금강산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코로나19 방역으로 평가·심사가 이뤄지지 못했고 올해 평가 대상에 포함돼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세계유산 등재로 기대되는 금강산 관광, 어떻게 시작됐나?
북한은 국제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원산 - 금강산 지구에 국제관광지대를 신설하기로 했다. 이후 북한과 중국에서 투자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추진력을 잃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은 남과 북이 손을 잡고 추진한 협력사업의 상징이었다. 
1989년 방북한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김일성 주석과 만나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한 데서 비롯된 금강산 관광은 약 10년 뒤인 1998년, 소 떼를 몰고 방북한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금강산 관광사업에 합의하면서 막이 올랐다.
1998년 11월 강원도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했고, 2003년 육로관광이 허용됐고, 2004년에는 당일 관광, 1박 2일 관광 상품도 등장했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금강산은 누적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했고, 2008년 승용차 관광 개시ㆍ골프장 완공 등 새로운 사업이 하나둘 생겼다. 

금강산 관광의 수난사
뱃길 관광에 이어 육로관광까지 성사되면서 순항하던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11일 남측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단됐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기약 없는 사업이 된 금강산 관광은 2018년 9월 평양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잠시 훈풍이 불기도 했다. 당시 남과 북은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로 끝난 뒤 북한은 현대아산과 우리 정부 소유의 호텔과 온천장을 비롯한 각종 관광시설을 철거했다. 
반면 자체 개발 의지는 지속해서 피력하고 있다. 2020년 당시 북한 경제를 총괄했던 김덕훈 내각 총리는 금강산 시찰 후 ‘금강산 관광지구를 세계적인 수준의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라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 다시 열릴까?
금강산이 북한의 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관광산업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유산 등재는 세계에서 보호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으로 공인받는다는 의미로 북한의 자연을 세계에 알리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남북 협력사업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 재개의 기대감도 있는 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서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남북이 함께 오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