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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북한의 패션

2023-06-21

ⓒ KBS News

지난 3월, 북한 노동신문은 새봄을 맞아 여성들은 미색, 연청색, 연록색, 연분홍색 등의 옷차림을, 남성들도 연회색, 연청색, 회색과 같은 밝은 색깔의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또 나이와 몸매, 얼굴 모양 등을 고려해서 자기 취미와 기호에 맞게 옷차림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은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이며 단정한 외모는 인품을 높이고 사회적으로 문화적인 정서와 풍치를 돋구어준다’고도 덧붙였다. 옷차림에서 개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사상정신상태를 보여주는 징표에 더 방점이 찍히는 것 같다. 이런 북한의 패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지 남북하나재단 김영희 대외협력실장과 알아본다. 


여성 양장을 내세운 의류 전시회 개최 

<여성 옷 전시회>는 여성복만 다룬 두 번째 대규모 전시로 지난해 10월 말 처음 열렸다. 계절에 맞게 고상하고 문명한 옷차림 문화를 보여준다는 취지로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은하무역국, 평양시 피복 공업관리국, 경흥무역국 등 50개가 넘는 기업소에서 원피스와 투피스, 셔츠, 치마, 운동복 등 다양한 봄 여름철 의상을 출품, 전시했다. 여성 양장을 내세운 의류 전시회는 북한에선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1988년 작품인 북한영화 <겉멋이 들어>의 주인공 현옥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대생이다.  옷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친구에게 영어를 새겨달라고 부탁했다가 핀잔만 듣는다. 결국 현옥은 직접 점퍼에 알파벳을 새겨 넣고 나가는데 친구들의 시선도 곱진 않다. 별스럽다는 친구들 지적에 현옥도 결국 당시 북한의 사회적 정서에 맞는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평양에서 열렸다. 세계청년학생축전은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자 북한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유치한 행사다. 이 때 목격한 청바지는 김영희 박사는 물론 북한 주민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북한 패션산업의 시작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90년대 경제난은 북한사회를 전반적으로 변화시켰다. 경제위기로 배급이 중단되자 곳곳에 장마당이 생겼다. 장마당을 통해서 외부세계의 패션을 경험했고, 또 장마당을 통해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의 수요가 생기면서 의류를 생산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국가의 의류공급체계가 붕괴되면서 당국의 요구가 아닌 주민들의 수요에 따른 의류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원하는 옷을 직접 선택하고 구입하게 됐다. 


리설주가 북한 패션에 미친 영향 

북한의 패션에 큰 변화가 생긴 계기 중 하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의 등장이다. 북한 매체는 지난 2012년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석한 리설주를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이라고 공식 보도했다. 그 이후 리설주의 일거수 일투족은 큰 화제가 됐다. 특히 무릎 위로 올라가는 치마나 화사한 색깔의 블라우스 등 그녀의 패션스타일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의 패션쇼라고 할 수 있는 <조선옷 품평회>에서도 투피스의 치마정장, 화려한 액세서리를 붙인 하이힐,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 등 리설주 패션과 흡사한 것들이 많이 소개됐다. 지난 2015년 중국 인민일보의 해외판 사이트인 해외망은  평양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이힐과 미니스커트가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 활동에 동행한 리설주의 패션을 따라하면서 유행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설주의 패션이 화제가 되면서 북한 패션에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한류 드라마가 북한의 패션에 미친 영향 

지난 3월 30일, 통일부가 공개한 <2023 북한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한국 드라마 등 각종 영상콘텐츠 소지를 단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콘텐츠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옷차림과 생활방식까지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몸에 붙는 바지 등 ‘서양식 날라리 풍 옷’ 검은색 이외의 색으로 염색한 머리 등 ‘서양식 머리모양’을 단속한고 있다는 증언이 실렸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 한류 콘텐츠들이 북한 패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북한의 소위  ‘패셔니스타’들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 패션을 많이 따라한다고 한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디지털 기술의 확산으로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에게도 남한 패션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고 한다.

국가공급의 붕괴와 시장화, 그리고 외부문화의 유입으로 북한의 패션과 패션산업은 변화해 왔다. 특히 한류의 유입과 함께 한국식 패션도 익숙하다고 한다. 패션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남북의 이질적인 문화가 좁혀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