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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지도자

주체사상

형성

주체사상탑

북한의 체제 이데올로기. 김일성의 1인지배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론이며 따라서 이는 김일성 개인숭배를 사상으로 정착시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에서‘주체’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1955년 12월28일 개최된 당 선전선동원대회에서 행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데 대하여’라는 김일성의 연설에서이다.

당시 소련에서는 철권통치자 스탈린의 사망으로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지게 됐고, 따라서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던 북한으로서는 김일성 1인지배체제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소련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주체'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이 연설에서 '주체'는 당면한 사상사업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쳤으나 김일성이 당내의 여러 파벌에 대한 숙청을 계속하면서 경제에서의 자립,국방에서의 자위 등 다른 분야로 확대 적용됐다. 이후 중 · 소 이념분쟁이 격화되고 현대 수정주의에 관한 시비가 벌어지자 대외정치 명분으로까지 활용되기 시작했다.

형성
내용 제기시기 배경
사상에서의 주체 당 선전선동원대회(1955.12.28) 스탈린의 사망
당내 남로당파 숙청
경제에서의 자립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1956.12.11) 스탈린의 사망
당내 남로당파 숙청
정체(내정)에서의 자주 당 중앙위원회 확대전원회의(1957.12.5) 스탈린의 사망
당내 남로당파 숙청
국방에서의 자위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1962.12.10) 스탈린의 사망
당내 남로당파 숙청
정치(외교)에서의 자주 제2차 당 대표자회(1966.10.5) 스탈린의 사망
당내 남로당파 숙청
유일사상체계 확립 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1967.5.28),
당 중앙위 제5기 제8차 전원회의(1974.2.12) 및 전국당선전일군강습회(1974.2.19)
스탈린의 사망
당내 남로당파 숙청
온 사회 주체 사상화 강화 제6차 당대회(1980.10.10) 스탈린의 사망
당내 남로당파 숙청

이후 김일성의 절대권력이 확고해지고 개인숭배가 대대적으로 추진되면서, '유일사상체계'란 개념이 나오게 됐고, 바로 그 유일사상체계가 주체사상이며, 여기에 기초한 정치 · 사상적 통일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는 '주체사상'이 당 이념으로 공식화되고 당 규약에 명문화됐다. 이어 1982년에 제정된 헌법은 주체사상을 공식 통치이데올로기로 규정했다. 1974년에는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면서 '김일성주의’를 “주체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고 나온 새롭고 독창적인 혁명사상”으로서 “주체의 사상, 리론 및 방법의 체계”라고 강조,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구별지음은 물론 후에는 더 우월한 사상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1974년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사실상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점이므로 주체사상은 김일성 1인지배체제, 유일지배체제, 김정일 세습체제 구축 등과 무관치 않음을 알 수 있다. 1982년 이후에는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를 지도적 원칙의 한 부분으로 구성하는 등 이론적으로 다듬어졌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1930년 6월 말, 중국 만주의 장춘현‘카륜’에서 열린‘공청 및 반제 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주체사상 창시를 선포했다고 주장하지만, 김일성이 1930년대에는 중국공산당의 무장부대인 동북항일연군에서, 그리고 1940년대 초반에는 소련군의 정찰부대인 88특별여단에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혁명적 수령관

주체사상은 대내외 정세변화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처음에는 “사람(집체적 용어로서 인민대중을 뜻함)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한 사상이라 했다. 즉 사람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자기 운명을자주적 ·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아가는 사회적 존재, 즉 역사의 주체지만 아무 조건 없이 자기 운명을 자주적,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는 없고,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을 때만 역사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령의 지도가 주체 확립에서 핵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혁명적 수령관’이다.

1986년에는 이 '혁명적 수령관'에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추가된다. 이는 “혁명의 주체는 다름아닌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이며“수령, 당, 대중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생사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혈연론'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논거가 되기도 한다.

김정일시대의 주체사상

김정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체사상'이란 용어 사용의 빈도 자체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주체사상'이 지배이념의 지위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한 이후 하위 실천이념을 부각할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에 '주체사상' 강조의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주체사상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선전의 강도는 약화되고 있지만 주체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붉은기사상’, ‘강성대국론’, ‘선군정치론’등이 새로운 실천적하위 통치이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